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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태양 위에 서서 세상을 본다는 것 <포스트 캐피털리즘>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이익을 측정할 가능성이 커지면, 더 많은 이익을 확실하게 가져다줄 시스템을 향해 점차 움직일 것이다. 140

크리스토퍼 메이어의 <포스트 캐피털리즘>은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신선한 시각을 선사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것이 없습니다. 매 챕터마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풍성합니다. 그러니 북리뷰를 쓰는 이 순간, 머리가 좀 복잡하긴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하는 리뷰는 재미가 없고, 유용하지도 않기 때문에, 느꼈던 핵심적인 사안들만 풀어 쓰는 것이 유효한데, 이 책은 버릴 것이 별로 없어서요. 다 쓰자니 너무 길어질 것 같고, 그렇다고 주요한 것들만 추스리자니 핵심을 놓치는 것 같고... 아무튼 행복한 고민입니다. 그래도 한번 시작해 볼까요?

첫 번째 화두는 자본주의가 변하고 있다는 겁니다. 
더 이상 이념의 전쟁은 없을 것이고, 살아남은 자본주의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하리라 주장하고 있어요.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언젠가 종말을 고하지 않으리라고 그 누가 예언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는 최초의 자본주의와는 또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자의 요점은 그러한 변화가 더욱 확산되고 광범위하게 진행되며, 가장 근본적인 요소마저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불러야 할 지는 확신할 수 없겠지만, 변화의 속성 만은 변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저자는 그 변화를 진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지요.

아무튼 변화되는 자본주의의 중심에는 신흥국가와 소기업 그리고 개인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놀라운 기술 발달의 효과로 인해 더 이상 자본이 자본주의의 핵심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클라우드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의 광범위한 확대는 자본의 문턱을 크게 낮추는 효과를 발휘하고, 그로 인해 예전에는 변방에 불과했던 신흥국가에서 전혀 새로운 자본주의의 변형이 도래되고, 거대 기업보다는 아이디어로 뭉친 소기업 및 벤처, 그리고 1인 기업이라 불리는 개개인의 능력이 변화와 진화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는 상황이 직면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이야 말로, 저자가 말하는 자본주의의 캄브리아기 라고 불릴만한 엄청난 변화의 폭풍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캄브리아기는 공룡의 쥐라기가 끝난 뒤, 생명체들의 놀라운 다양성들이 폭발하듯 발생된 시기를 말합니다. 

"무언인가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 그 지배적인 종을 추방할 때 (공룡이 평정했던 세계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소행성 충돌 같은 경우) 비로소 억눌렸던 '아이디어'가 표출되는 공간이 열린다. 103


두 번째 화두는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어떤 변화에 직면하고 있으며, 또한 자본주의의 다양한 형태는 어떠한 모습인가 하는 겁니다. 먼저 기업을 압박하고 있는 요인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 볼까요? 이 또한 기술의 발달과 의식의 발전에 기인한 바이겠지만, 기업의 변화를 요구하는 대규모적인 외부적 압박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익 만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닌 사회 전반적인 책임을 요구하는 소비자와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더 이상 귀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점점 도래하고 있는 겁니다. 

"진화하는 자본주의에서는 기업들이 긍정적, 부정적 외부효과 모두에 대해 점점 책임을 지고 이를 내면화하리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155

따라서 그냥 외부의 압박에 못이겨 억지로 하는 기업이 아닌, 그런 시대적 요구 사항들을 내면화하여 스스로 변화하는 기업이 태생되고, 그래서 이런 기업만이 시장에서 지속 가능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다양한 요구와 가치들을 어떻게 측정하여 지표로 삼고 기업과 자본주의를 이끌고 변화 시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매우 실질적이고 중요한 사안입니다. 현재 기업들이 이익 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이러한 원인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겁니다. 


"기업이 많은 종류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가치 중 많은 것들이 측정하기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측정 가능한 현상과 측정 불가능한 현상이 함께 존재할 때에는 측정 가능한 현상에 주의를 기울이기 마련이다. 119

새로운 가치 측정 체계의 구축은 그래서 더욱 중요합니다. 1972년 최빈국 중 하나인 부탄의 왕 지그메 시예 와추크는 새로운 가치 측정 지수를 발표합니다. 이름하여 국가행복지수(GNP)입니다. 국내총생산(GDP)를 대신할 지표로써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행복에 대한 가치라고 믿는 데서 출발한 놀라운 발상의 전환입니다. 저자는 GDP(국내총생산) 부조리한 부분에 대해서 실랄하게 비판합니다.

"GDP(국내총생산)만큼 정교화된 국민소득계정은... 사회 행복의 대리지표로서 국민소득계정은 애처로울 정도로 부족하다. 126

"국내총생산은 쟁점으로 가득하다. 129

"기본적 사항들이 충족되면 수입의 증가는 행복의 증가와 더는 상관 관계가 없다. '최소욕구이론' 122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가의 발전 지표는 GDP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요? 그러나 이해는 됩니다. 왜냐하면, 사회의 다양한 가치들을 정확히 표출하고 대변할 수 있는 기준이나 지수에 대한 논의가 아직까지 너무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사회의 다양한 가치들을  함께 성취하고 싶어하지만, 구체적인 기준을 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막연한 의도만으로는 진지한 행동과 변화를 이끌어 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측정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집니다.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측정되는 것은 관리할 수 있다. - 피터 드러커 130

그리하여 저자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시스템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싶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측정 대상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 130

"좋은 경제 측정법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치 있는지 가르치고 그 후에 측정법이 피드백을 반영하면 그것은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새로운 행동은 규범이 되고 사회를 형성한다. 149

정말 멋진 글이죠? 제가 처음 리뷰를 시작할 때 그랬죠. 뭐 하나 버릴 것이 없다고.ㅠㅠ 걱정입니다. 리뷰가 점점 더 길어집니다. 

자, 아무튼 자본주의는 외부의 요인들과 환경의 변화로 인해 진화의 요구를 저버릴 수 없게 되고,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함유할 수 있는 측정 체계의 발전과 더불어 더욱 변화의 속도는 가속화 되리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세 번째 화두로 넘어가 볼까요? 자본주의의 기본적 속성이 아직도 유효한 지에 대해 언급해 보고, 변화의 실상 들을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경쟁이라는 요소는 자본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속성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현재 자본주의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쟁이 실상은 사이비경쟁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 기업들은 진짜 경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말로는 공정한 공정을 통해서 시장이 올바르게 유지되고 발전된다고 주장하지만, 기업의 경우 어느 정도 시장의 우위를 확보하게 되면 이런 지위를 남용하여 우월적, 독점적 상태를 지속하고자 한다는 겁니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대기업들의 행태를 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경제를 흔드는 것은 대기업과 같은 보이는 손입니다. 그래서 이미 현재 기업들이 기본적인 자본주의의 속성을 스스로 바람직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시켜 오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 새로운 요소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저자가 표현하는 바 '보이지 않는 손들' 입니다. 소위 공유, 협동, 나눔의 정신을 표방하는 새로운 시대 정신이 실제로 구현되기 시작합니다. 위키피디아는 너무도 잘 알려진 성공적 사례입니다. 또 하나의 예는 우샤히디(Ushahidi)라는 공유 플랫폼 프로그램입니다. 우샤히디는 몇 몇의 젋은이들이 2007년 케냐의 선거 이후의 폭동 사례를 세상에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만든 공개 플랫폼인데, 누구나 핸드폰을 통해서 우샤히디에 접속하여, 폭동의 개략적인 정보를 남길 수 있도록 만든 개방 API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수많은 자발적 시민들이 자신의 주변에서 발생된 폭력의 상황들을 우샤히디에 업로드하게 되었고, 폭력의 심각성과 실상을 실시간으로 세상에 알리게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 어떤 조직도 해내지 못했던 일들을 이런 간단한 공개 프로그램이 해 낸 겁니다. 아니, 수많은 시민들의 자발적 협동과 공유, 나눔의 정신이 세상을 변화시킨 겁니다. 


"집단적 행동이 일반화되는 것이 유리한 환경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들의 작용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금전적 이익과 관련된 협상에 들이는 비용이 항상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고에 일단 익숙해지면, 자신의 진짜 관심사에만 초점을 맞추는 행동이 촉진되는 많은 사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56

여기에 덧붙여, 제4부문이라고 명칭되는 새로운 형태의 기업의 등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제4부문이란 기업부문, 정부부문, 그리고 사회부문으로 통상 구별되는 형태에 추가하여 사회부문과 기업의 속성이 가미된 형태의 기업을 의미합니다. 책에서 많은 이야기와 사례들이 넘쳐납니다. 인내 자본에 대한 이야기, 하이브리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사례, 사회성과연계채권, 번영 지수 같은 새로운 측정 기준.. 아.. 정말 다 언급하고 싶네요. 그렇지만, 더 가면 안될 것 같습니다. 리뷰의 목적을 책을 읽게 만드는 동기부여를 주는 것이지, 책의 모든 내용을 다 설명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저자가 언급한 몇 가지 멋진 문장을 언급하는 것 만으로도 이 챕터에 대해 충분한 가치 부여는 될 것으로 믿습니다. 


"세 부문이 수렴하는 곳에 제4부문이 있다.. 이윤추구(For profit)가 아니라 사회적 의미의 이익을 뜻하는 사회적 편익(For benefit)이라는 표현. 314

"인내자본을 이용하고 가치를 광범위하게 측정함으로써 사회 기업가와 혁신가가 새로운 종류의 가치 창출 사업 모델을 발견하는 것이다. 316

"사회 구성원의 힘을 증대시키는 테크놀로지의 능력을 통해 사회의 욕망이 기업의 동기와 결합한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근사하고 놀랄 만한 자본주의의 반전이다. 337


자 이제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핵심적인 내용은 다루었다고 생각되고, 나름대로 저의 느낌도 충분히 전달했다고 믿습니다. 
자본주의는 현재도 진화하고 있고, 앞으로 그 속도는 훨씬 빨리 지고 다양해 질 것입니다. 다양한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들이 등장하게 되면, 기업 스스로 다양한 가치를 향해 변신하고자 하는 노력이 가속화 될 것입니다. 제4부문으로 일컬어지는 다양한 기업 사례들이 나타나고, 또 사라질 것이지만, 협동과 공유와 의미 있는 가치를 향한 거대한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미래는 아무도 정확히 예상할 수 없습니다. 저자 역시 동의하고 있는 바입니다. 자신의 주장이 시대의 변화를 얼마나 정확히 읽어 내고 있는지는 단언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변화의 동인에 대해서 동의하고, 진화라는 개념을 사회적 변화에 적용하는데 크게 이견이 없다고 하면, <포스트 캐피털리즘>에서 주장하는 많은 아이디어들은 충분히 납득할만 한 것들입니다. 

이 책의 영어 원제는 <Stand on the Sun>입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시대는 지구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Stand on the Earth' 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런 시각에서는 자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사람들은 뭔가 측정이 잘 못 되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은 불변의 진리였기 때문에, 이런 시각을 벗어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죠.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측정 오류들이 정확하게 일치할 수 있는 지점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세상을 <Stand on the Sun>에서 바라보면 되는 거였죠. 그렇습니다.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사실들은 퍼즐처럼 맞아 떨어지게 되는 거였습니다. 

우리가 <Stand on the Earth>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온통 혼란스러운 세상이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해서 <Stand on the Sun>의 위치에서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이런 혼탁한 세상의 변화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틀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원제는 아주 시의 적절합니다. - 물론 <태양 위에 서서>라고 직역하여 책을 출간했으면,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갸우뚱했을 것 같기는 합니다. 물론 훨씬 책도 덜 팔렸을 것 같고.. 

이젠 정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