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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글을 쓴다는 것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그렇다. 그냥 쓰라...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중에서


저희 아버지는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일 빠짐없이 일기를 쓰고 계십니다. 어린 시절, 밤마다 다이어리에 빼곡히 무언가를 적어내려 가시는 모습을 보고서, 대체 뭐하러 저렇게 열심히 쓰시나 싶었습니다. 별반 다를 것 없는 매일의 일상에서 무슨 특별히 적을 것이 있을까 생각이 되었고, 누가 알아봐 주지도 않는데 그런 열심이 어떤 의미일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무엇이 대체 아버지를 매일 밤 책상 앞에 앉아 당신의 하루를 기록하게 만들었을까요?



나탈리 골드버그의 <뼈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읽었습니다. 그녀의 글쓰기 제안은 이렇습니다. 

쓰고 또 쓰라. 
오랜만에 이렇게 리뷰를 쓰려고 보니, 글이 자주 막히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맞는 말입니다. 꾸준히 쓰고 또 쓰는 과정 속에서 소위 글발이 살아나게 되어 있는 거죠. 꼭 잘 써야 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생각을 물 흐르듯이 정리하는 기술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것 같아요. 꾸준히 글을 쓰는 연습은 글쓰기의 기본인 듯 합니다.

일탈을 허용하라. 
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서는 새로운 글감을 찾기가 어려울 테죠. 

"우리 삶에는 반드시 미쳐 버려야 할 시기, 사물을 바라보는 일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207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진짜 다른 상황, 낯설은 조건에 몸을 던지는 것이고, 또 다른 방법은 같은 일상이라 하더라도, 시각을 달리 해서 보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자극이 필요하다는 거죠. 제가 '낯설게'라는 글을 종종 쓰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일부러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보는 관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인 이름을 불러 주어라. 

"그냥 '과일'이라고 말하지 말라. '이것은 석류 열매다' 처럼 어떤 종류의 과일인지 분명히 밝혀 주라. 사물의 이름을 불러 주어 그 사물의 고유성을 만들어 주라."

우리가 그 사물의 이름을 정확히 부를 때, 그 사물의 구체성과 실존이 글을 생생하게 만들고 살아 있게 만듭니다. 구체적이지 않으면, 글도 두리뭉실해 지는 법이죠. 그냥 집이라고 부를 것이 아니라, 이러 이러한 집, 누군가 자신의 삶을 부대끼고 살아가고 있는 그 집. 약간은 낡았지만, 내 책상 구석에 앉아 있으면, 아침 7시쯤 왼쪽 아파트 벽 사이로 햇살이 비쳐들기 시작하는 21층 바로 내 집, 내 방이야 말로, 살아있는 실체이자,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근원적인 질문. 왜 글을 써야 하는 것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것이 다양하잖아요? 글쓰는 행위가 글을 읽는 대상을 고려하여 써야하는 건지, 아니면, 자기 정화의 기능으로서 충분한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글쓰기를 통해서 스스로의 아픔을 치료하는 방법으로도 유용할 테지만, 그런 글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위로를 줄 수도 있을 테고, 또는 자신의 지식을 객관화하여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글을 쓰기도 할 터이지요. 다 맞는 얘기입니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들은 모두 정당합니다.

아버지는 아마 오늘도 잠자리 드시기 전에 다이어리를 펼쳐, 하루의 일상을 적고 계실 겁니다. 뼈속까지 내려가서 쓰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당신의 삶은 오롯이 거기에 들어있을 테지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국내도서>시/에세이
저자 : 나탈리 골드버그 / 권진욱역
출판 : 한문화 200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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