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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열정이 삶을 불태우다 <달과 6펜스>

 

 

 

"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 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평범한 직장인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찰스 스트릭랜드는 한 장의 편지로 이별을 통보하고 파리로 떠나 버립니다. 

 

"당신과 헤어지기로 마음 먹었소... 다시 돌아가지는 않소. 결정을 번복하진 않겠소."
 
살면서 아무런 낌새를 느끼지 못했던 찰스의 아내는 그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화자는 그녀의 부탁을 받고 파리로 그를 설득하기 위해 떠납니다. 파리에서 누추한 호텔에서 기거하고 있는 찰스를 만난 화자는 그가 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왔는지 묻습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부인을 버렸단 말입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소... 나는 그려야 해요."
 
살면서 우리는 문득 가슴을 두드리는 '달'의 속삭임을 듣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열정이고, 자신을 찾으라는 부름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6펜스'를 버리지 못합니다. 내 손에 쥐어진 몇 안되는 그 돈을 뿌리치기 두렵습니다. 나의 가정, 나의 신분, 내가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고, 애써 달의 부름을 못들은 척 흘려 보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내야 하고, 나 혼자 뿐인 삶이 아닌 책임이라는 것 또한 내 존재의 큰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찰스 스트릭랜드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방법이 없었어요. 떠나는 수 밖에. 자신의 속에서 불타 오르는 그 열정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서는 그냥 죽어버릴 것 같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모든 것을 내팽겨 치고, 그는 그림을 그리러 파리로 떠납니다. 
 
찰스 스트릭랜드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은 우연한 경험이었습니다. 
 
터크 스트로브라는 맘씨 좋은 평론가의 아내가 자신에게 빠져드는 것을 묵인하고, 끝내 자신의 열정과 무관심으로 그녀를 자살로 이끌게 만든 그는 정말 나쁜 인간입니다. 화자는 울분을 참지 못하였고,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간을 증오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 자, 이제 그만하면 그 여자 이야기는 충분하오. 전혀 중요할 것 없는 사람이니까. 갑시다. 내 그림을 보여줄 테니."
 
미치지 않고서야... 하지만, 그의 이 대사에서 조르바의 목소리가 겹쳐집니다.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조르바는 춤을 추자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가치들은 의미가 없다. 이 순간이야말로 제대로 놀 수 있고, 자신의 날 것을 토해낼 수 있는 때라고 소리칩니다. 열정이란 이런 것일까요? 병적인 자기 집착과 불꽃 같은 내면의 목소리에 대응하고자 하는 이런 곧은 것들은 제겐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인생의 파멸로 달려 갑니다. 주체할 수 없는 것들이 자신의 삶을 온통 불사른다 해도 그런 인간들에겐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인가 봅니다. 어찌할 수 없는 길인가 봅니다.
 
결국 찰스 스트릭랜드는 타히티로 떠납니다. 거기서 생의 화려한 마지막을 불사릅니다. 문둥병이라는 극악한 질병 속에서도 끝끝내 놓지 못하는 붓.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외로운 작업은 그의 삶을 온통 갉아 먹었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죽음 후에야 비로소 그의 그림을 세상에 인정을 받게 됩니다. 화자는 그의 마지막 이야기들을 듣기 위해 타히티로 가게 됩니다. 타히티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일상의 것들이 무의미해 지는 지점. 자신의 있는 그대로 살면서도 손가락질 받지 않을 수 있는 곳. 쓸쓸한 외로움 쯤이야 그냥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곳. 열대의 뜨거움이 자신의 열정으로 동화되는 곳. 바다가 있고, 그 속에 떠 있는 섬 안에서 개별의 이야기들이 잊혀지듯 흘러가는 곳. 화자는 그 곳에서 비참히 죽어간 찰스 스트릭랜드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의 마지막 생을 듣고서 그는 생각합니다. 
 
" 스트릭랜드는 불쾌감을 주는 사람이긴 했지만, 나는 지금도 그가 위대한 인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찌 타인의 삶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삶 조차도 제대로 증명해 내지 못하는 바에야, 우리는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열정을 따라 숙명처럼 산화해 가는 삶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나는 그처럼 살 수 없고, 그 또한 나처럼 살 수 없었기에, 모두 다 그만한 나름의 가치로 현재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다만, 한 가지 여운처럼 흐르는 한 가지는 이렇습니다. 찰스 스트릭랜드의 미친 뜨거움까지는 아닐 지 언정, 내가 숨쉬며 살아 있는 이 순간이 내가 정말로 원하는 바로 그 모습인가 하는 자각 말입니다.
화자가 타히티를 떠나며 느꼈던 그 아련한 아픔이 바로 그런 자각에서 비롯된 것일 테고, 저 역시 그런 쓸쓸함에 명치 끝이 따끔거립니다. 
 
"타히티를 떠나는 날이 왔다.... 배가.. 열린 대양을 향해 침로를 정하자, 나는 왠지 모르게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타히티는 너무 먼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는 이 섬을 보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내 인생의 한 장은 그렇게 끝났고, 나는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