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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인간다움을 찾아서 <가장 인간적인 인간>


미국의 인공지능학회에서는 '튜링 테스트'란 행사를 매년 열고 있습니다.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이름에서 따온 이 행사는 '인간같은 기계(컴퓨터)'가 가능한 지를 검증하는 행사입니다. 시험 방법은 이렇습니다. 서로를 가린 채, 심사위원단은 인간 연합군과 컴퓨터 프로그램과 5분간 대화를 나눕니다. 상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순수하게 단말기 상의 대화만을 가지고 누가 인간인지 누가 컴퓨터인지 밝혀내는 경기입니다. 최고점수를 받은 인간에게는 '가장 인간적인 인간' 이란 상을, 최고점수를 받은 컴퓨터에겐 '가장 인간적인 컴퓨터'란 상을 주게 됩니다.

<가장 인간적인 인간>의 저자 브라이언 크리스찬은 '튜링 테스트'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인간연합군의 일원으로 2009년 튜링 테스트에 참가하게 됩니다. 테스트를 준비하는 6개월 동안 인공지능 컴퓨터에 대해 심도 있는 관찰을 했고, 더불어 무엇이 가장 인간적인 특성인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찾아낸 '가장 인간다운' 특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컴퓨터의 인간다워짐을 공부하면서, 진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배워 나가는 아이러니라니요.

"기계가 어떤 유형의 인간 행동을 모방할 수 있는가? 라는 과학적 물음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한다." 71

호모 사피엔스란 말은 생각하는 인간이란 의미입니다. 생각, 사고라는 기능이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기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하지만, 과연 합리적인 사고와 지능이 인간만의 고유한 성질일까요? 계산하는 능력과 합리적인 사고 측면에서는 이미 컴퓨터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1997년 IBM에서 만든 체스 컴퓨터인 딥 블루는 당시 전설적인 체스 세계 챔피언인 가리 카스파로프와 경기에서 승리합니다.  승패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긴 합니다만, 중요한 것은 이미 기계의 사고하는 능력은 인간의 것과 거의 유사하거나 넘어설 수 있음이 분명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컴퓨터는 이미 인간의 모습과 유사한 특성을 가지게 된 것일까요? 브라이언 크리스찬은 합리적 사고와 같은 면이 아닌 진짜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들을 찾아 나섭니다. 수많은 사례와 실제 '튜링 테스트'의 기록들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해결되지 않은 인생', '예상치 못한 균열', '즉흥성', '서로의 진짜를 알아가는 능력', '압축되지 않는 개별적 낯설음','무방비 상태' 등과 같은 것들이 인간만이 지니는 고유한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직업 가수인 그녀는 흔들림 없이 노래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공연 때마다 미세하게 감지되는 그 날만의 독특함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 자신이 터득한 기술에 균열이 생기면서 자신을 빠져들게 만드는 뜻밖의 순간들, 그래서 사물을 새롭게 보고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 있음을 알리는 신호라 하겠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168

오늘은 어제와 같지 않습니다. 우리의 감정과 생각은 늘 변하기 마련이고, 뜻밖의 사건들과 새로움으로 혼란스러워합니다. 늘 같은 일상이라 느끼지만, 그 속에 미세한 변화는 있게 마련입니다. 똑같은 상황은 없고, 그래서 늘 선택의 기로에서 두려워합니다. 이런 상황들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인 셈이죠. 인간이기 때문에 불안해 하는 겁니다.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이성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인간적이지 않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더없이 정확한 표현인 셈이군요.

결국, 브라이언 크리스찬은 2009년도 '튜링 테스트'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간'상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컴퓨터들의 능력은 나날이 발전되고 있고, 점점 더 인간을 닮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미래의 어느 날, '튜링 테스트'는 없어질 지도 모릅니다. 도저히 인간과 컴퓨터를 구분하기 불가능해져 버려서 말이죠. 하지만, 이런 과정과 노력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됩니다. 결국 혼돈과 불안 같은 요소야 말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특성이고, 이런 특징들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 자신을 더욱 더 사랑하는 것,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 하는 노력들이 우리를 좀 더 인간답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것이고, 세상을 좀 더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