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중에서
그런데, 혹시 ‘카스텔리오’란 이름은 들어보셨나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저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접하게 되었죠. 20세기 가장 위대한 전기 작가 중 한명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 <다른 의견을 가진 권리>는 바로 카스텔리오란 이름 없는 인문주의자에 대한 전기입니다. 왜 츠바이크는 이렇게 무명의 지식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이제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에게 중간적인 감정이란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나의 선택… 칼뱅을 부정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칼뱅에게 종속될 뿐이었다.” 42
하나의 신념에 대한 무서운 집념은 그 스스로에게도 가혹하여, 세상의 어떤 즐거움과 쾌락으로부터 멀리했습니다. 밥은 겨우 하루에 한끼만 먹었고, 하루 종일 엄청난 업무에 만 몰입했습니다. 운동이나 산책 여행도 거의 하지 않았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 위에 것을 일생의 유일한 목표와 의미로 생각했어요. 건강도 좋지 않았고, 병약한 육체적 고통을 정신의 힘으로 극복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칼뱅은 이렇게 고백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내 건강은 계속적인 죽음과 비슷하다.” 71
<세르베투스의 죽음>
<카스텔리오, 칼뱅과 맞서다>
그리고 카스텔리오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는 이미 칼뱅으로부터 한 차례 억압을 당한 바 있었고, 그 이유 역시 그의 의견과 달리하는 것 때문이었어요. 칼뱅은 카스텔리오가 위험한 인물이 되리라 이미 예견했죠.
“모든 독재의 영원한 적인 독자적인 인간을 알아 보았다.” 108
칼뱅의 방해로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의 이 성직자는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지 못하여 이곳 저곳을 떠돌며 어려운 생활을 이어나가야 했습니다. 낮에는 보잘 것 없는 일들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고, 밤에는 자신의 꿈을 위해 책을 쓰고, 변역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카스텔리오의 귀에 세르베투스의 소식이 들려 옵니다. 칼뱅의 독선으로 세르베투스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거죠. 침묵하며 조용히 살던 이 소심하고 힘없는 인문주의자는 양심과 정의의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고 결심하였고, 거대한 칼뱅을 향한 무모한 도전을 시작합니다.
<이단자에 관하여>란 글을 통해 카스텔리오는 말합니다.
“이단자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나는 우리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 생각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우리가 이단자라 부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98
이 글은 사상의 자유를 가장 신성한 기본법으로 요구한 유럽 최초의 문서이기도 했어요. 그는 다른 의견을 가질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하였고, 어떤 의견이라도 무력이나 강요를 통해서 타인의 생각을 지배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카스텔리오는 관용만이 이런 무법의 독재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칼뱅의 글에 반대함>이란 책에서 곧바로 칼뱅의 행동에 비수를 꽂습니다.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절대로 교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을 뜻할 뿐이다.” 227
칼뱅의 글에 하나 하나 반박해 가며, 논리적이고 차분한 논조로 그러나 강하게 칼뱅이 세르베투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행위를 비판합니다. 세르베투스는 단지 다른 의견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였을 뿐이다. 그는 다르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단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으로 몰고 간 칼뱅의 행위는 명백한 잘못이며, 개신교의 자유의 정신을 망각하는 행위이다라고 말입니다.
<역사는 카스텔리오의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역사는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 규정됩니다. 칼뱅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카스텔리오는 힘없는 지식인에 불과했습니다. 칼뱅은 <칼뱅의 글에 반대함>이란 글이 출간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카스텔리오를 비방하였고, 억압하였습니다. 자신의 변론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카스텔리오는 무력할 수 밖에 없었고, 어떤 곳에서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쓸쓸히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그의 이름은 지워집니다. 오로지 칼뱅만이 커다란 위업과 사상으로 기억될 뿐이었어요.
그러나 카스텔리오란 이름은 소신 있고, 양심적인 몇 몇의 지식인의 입으로 살아 있었고, 출간되지 못하고 사라진 그의 글과 책들이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권력에 맞선 작은 개인의 양심적 선언과 행동이 기어이 슈테판 츠바이크의 귀에까지 들려오게 됩니다. 무려 300년이 흐른 뒤에야 말이죠. 이 책을 쓰던 당시 (1935~1936년)는 히틀러의 제국적 독재가 절정을 치닫고 있었고, 전쟁의 불운이 세계를 감싸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침 츠바이크는 히틀러의 독일을 떠나 영국에 머물고 있었고, 독재를 억압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습니다. 그러는 중, 카스텔리오란 인물을 만나게 되었고, 단숨에 이 인물에 빠져들었죠. 그리고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쓰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던져진 소명은>
이렇게 책의 내용을 길게 정리한 리뷰도 오랜만입니다. 나의 의견보다는 츠바이크의 목소리, 그리고 카스텔리오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었나 봐요. 아직도 우리에겐 카스텔리오란 이름은 낯설기만 합니다. 역사는 이렇게 권력의 편에 서 있는 것이고, 권력을 쟁취한 이들의 이름만이 기억될 뿐입니다.
칼뱅의 업적은 존중 받아야 하고 인정해 줘야 합니다. 하지만, 기나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개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밝혀 내는 일은 더더욱 중요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작은 업적이 보다 근원적인 인간 본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일 경우, 우리는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겁니다. 카스텔리오는 자신의 양심을 따라 행동했고, 그의 양심은 보편적 인류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 중 하나인 사상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체로 매몰되지 않고, 하나의 가치로서 존중 받을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 그것은 그 어떤 압력과 강요에도 지켜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역사는 밀물과 썰물이며, 끊임없이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것이다. 하나의 권리는 절대로 영원히 확보된 것이 아니며, 어떠한 자유도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폭력에 대해서 안전하지 못하다.” 286
지금을 살고 있는 이 땅의 우리들은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환호하고, 또 누군가는 절망에 슬퍼하고 있죠. 다만 우리의 걸음이 올바르게 나아가길 원할 뿐입니다. 시대의 흐름이 역행하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향해 가길 바랍니다. 역사는 반복되나,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교훈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반복되는 역사의 도그마 속에서도 진보와 발전의 역사를 그려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작은 칼뱅보다는 카스텔리오와 같은 인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힘없는 존재였지만, 자신의 양심에 따라 꿋꿋이 버티어 낸 잡초 같은 사람들을 가슴 속에 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사람들의 세상이 만개하는 그 날이 도래하도록 꿈꾸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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