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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Book Review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인생의 첫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 밀란 쿤데라

네 명의 인물과 한 마리의 개가 있어요. 테레자는 토마시를 사랑합니다. 토마시도 테레자를 사랑하지만, 테레자와 같은 방식은 아니에요. 사비나는 토마시의 연인입니다. 그리고 프란츠의 연인이기도 하구요. 프란츠는 사비나를 사랑하여 모든 것을 포기했지만, 사비나는 그런 프란츠를 배신합니다. 카레닌은 토마시와 테레자가 키우는 개입니다.   

대학교 1학년 쯤이었으니, 거의 20년 전에 처음으로 이 책을 읽었었죠. 그 때도 뭔가 뜨거운 것들이 올라왔었는데, 매일 먹던 술 때문이었는지, 책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어요. 그리고 세월이 이렇게 흘러 다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펼쳤습니다. 

책은 그런 것 같아요. 자신의 상황과 생각과 감정에 따라 달리 읽혀질 수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죠. 예전엔 지루했던 책들이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섬광같은 감동을 주기도 하구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내게 그런 책이었어요. 뒤통수를 후려치는 감성들과 철학들.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측은함과 공감. 사랑이라는 감정이 내뿜는 광기와 환희와 슬픔까지. 

4명의 인물들을 이야기하고 싶네요. 할 얘기들이 너무 많은 텍스트이지만, 그러다간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오늘은 여기까지만.

 

 



토마시

 

토마시는 꽤 유능한 외과 의사입니다. 그는 독신으로 살고 있으며, 여자들과의 섹스에 집착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에겐 여자들을 만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실천하는 유일한 방식이었으니까요. 아무튼 그는 지식인이었고, 또 인자합니다. 로맨틱한 남자이기도 했지만, 그는 아내와 아들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에겐 모든 긴밀한 관계들이 짐이었고, 부담이었어요. 그는 혼자만의 자유로운 삶을 산책을 거니는 마음처럼 가볍게 즐기고 싶어해요. 그래서 그는 사랑을 믿지 않습니다. 사랑의 진지함과 그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는 거죠. 그는 인생의 순간들에 최선을 다할 뿐, 다른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그런 그에게 바구니에 담긴 아기처럼, 테레자가 다가 옵니다. 여섯 번의 우연이 겹쳐져서 만들어진 이 만남 때문에, 토마시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되요. 토마시는 그녀에게 사로 잡힙니다. 미쳐 생각할 틈도 없이, 그의 삶 속으로 그녀가 훅 들어 왔어요. 그리고 결국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그 결혼이라는 것이 그에겐 결코 기쁜이 되진 않았어요. 그는 여자들을 만나야만 했어요. 물론 테레자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그의 삶 속에서 로맨틱한 여자들을 지워버릴 수는 없었죠. 그래서 테레자에 대한 사랑의 증표로 결혼을 한 거였어요.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는 그런 사람이었죠. 그럴 수 밖에 없었죠.


소련의 침공으로 스위스로 이주한 토마시와 테레자. 하지만, 테레자는 이 답답한 공간을 참을 수 없어 했고, 토마시의 바람기에 가슴 아파 했기에, 어느 날 훌쩍 다시 체코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혼자 남은 토마시... 다시 자유와 가벼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된 토마시는 그러나 홀로 차가운 아파트에서 훌쩍이고 있을 테레자에 대한 연민으로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워 해요. 결국 테레자가 떠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병원 상사에게 자신을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병원장은 만류합니다. 이렇게 돌아가면, 다시는 의사를 하지도 못할 뿐더러, 자유로운 삶도 보장되지 못한다. 하지만, 토마시는 체코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해요. 병원장이 말합니다. "그래야만 하는가?". 토마시는 말합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이 단순한 대화는 베토벤의 4중주 테마입니다. 인생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반복되는 의미로의 귀환을 상징하는 셈이죠. 그럴 필요가 없어요. 가벼운 삶을, 한번 뿐인 삶을 생각하면요. 그런데, 그래야만 한다는 거죠. 모든 것들을 내팽기치고, 사랑하는 테레자에게 가야만 한다는 거죠. 그래서 기어코, 토마시는 삶의 무게를 느끼는 세상으로 발을 디디게 됩니다.

 

Muss 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Es Muss sein. (그래야만 한다)

 

그 후로도 토마시는 인생의 가벼운 삶을 차마 버리지는 못해요. 영혼에 새겨진 문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법이죠. 그러나 결국엔 테레자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세월의 무게로 인해 그녀의 품 안에서 비로소 영혼의 안식을 찾게 됩니다. 


테레자

 

테레자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테레자의 엄마는 젊은 시절 매우 미인이었지만, 하룻밤의 실수로, 남자답지만 능력이 부족한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테레자를 낳았어요. 테레자의 엄마는 이런 자신의 인생을 원망하였습니다. 자기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는 존재였는데, 우아하고 품위있게, 아름다운 육체를 찬란히 빛나게 만드는 그런 인생이었어야 했는데, 모든게 돌이킬 수 없이 되어 버린거죠. 그래서 그녀는 육체의 허망함을 비웃었고, 더러워졌고, 비굴해 졌습니다. 테레자는 이런 엄마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테레자는 육체 속에 숨겨진 영혼의 순수함을 믿었어요.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건져내 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운명처럼 토마시가 나타난 거죠. 그녀는 모든 것을 던져서 그를 사랑했고, 운명처럼 그를 붙잡았습니다. 아름다웠던 그녀는 바구니에 담긴 아기처럼 토마시의 가슴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하지만, 테레자는 토마시의 바람기에 늘 가슴이 아파했어요. 사랑했지만, 진정 자신만의 것으로는 소유할 수 없어서 절망해야 했고, 결국엔 자신이 버려질까봐 두려워 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차마 떠날 수는 없었어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자신의 삶은 이미 그에게 얽매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죠. 이렇게 사는 건 그녀의 운명이었어요. 어쩔 수 없었죠. 존재의 무거움, 가치와 의미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그래서 사실 테레자와 토마스는 같은 삶의 쳇바퀴에서 서로를 향해 달리고 있는 거예요. 달리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녀는 토마스가 빨리 늙기를 바랬습니다. 토마시가 더 이상 힘 쓰지 못하고 매력적이지 못하여, 결국 자신에게 한 마리의 토끼가 되어 안주하길 바랬습니다. 그에게 온전히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고, 늘 함께 있고 싶었어요.

 

당신이 늙기를 바라. 지금보다 열살 더. 스무 살 더!

 

숱한 아픔과 인내와 배려와 다독임과 슬픔과 사랑의 끝에 다다른 두 사람은 시골의 어느 마을에 정착하게 됩니다. 테레자는 어린 소들을 먹이는 목동으로, 토마시는 트럭 운전수로서 살아 가게 되죠. 테레자는 더 이상 토마시의 머리에서 나는 여자 성기의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되었고, 토마시가 영원히 자신의 곁에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테레자는 고백합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 정말 여기까지 와야만 했을까!

자신의 이기적인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토마시의 인생을 송두리채 망가뜨려 버린 것은 아닌지 후회하기도 해요. 사실 테레자는 토마시가 결코 자신을 버리지 못할 것이란 것을 알았어요. 그는 바구니에 담겨 자신의 인생에 들어온 아기를 버리지 못해요. 연민과 사랑은 어쩌면 그에겐 같은 감정일 수도 있을테니까. 그녀는 이 점이 그의 아킬레스건이라는 걸 잘 알았어요. 어쩌면 테레자는 그런 연약함을 이용해서 토마스를 자신의 삶 속에 깊이 새길 수 있었던 걸 테죠.

인생의 모든 성취와 의무감을 저버리고 자신의 곁에서 토끼처럼 연약해져 버린 남자를 위해 테레자는 가장 아름다운 옷을 준비했고, 그와의 마지막 춤을 춥니다. 춤을 추면서,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그의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아련한 슬픔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가 앞으로 영원히 자신의 곁에 있음을 믿음으로서 진정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오고 갔다. (중략) 그녀는 지금 그 때와 똑같은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은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사비나

사비나는 토마시의 연인입니다. 숱한 토마시의 여자들 중에서도 특히 사비나는 토마시의 영혼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었어요. 둘은 정말로 닮았습니다. 사비나와 토마시는 존재의 가벼움을 따라 영혼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과 인생 사이를 유유히 흘러 갑니다. 또한 섹스에 대한 둘의 취향도 너무 닮아 있습니다. 두 사람의 육체와 영혼은 서로를 향해 있었고, 또 서로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렇다고 둘은 결혼을 원하지도 않았어요. 서로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구요. 자유롭게, 자유롭게, 스치듯 자유롭게 사랑하고 살아가자. 

하지만, 토마시에게 테레자가 나타났습니다. 사비나는 토마시가 테레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고, 이제 다시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비나는 프란츠를 만납니다. 그는 아주 매력적이고, 자상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모든 것을 바쳐서 자신을 사랑해 주었습니다. 사비나도 프란츠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그녀는 압니다. 그와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이윽고, 프란츠는 사비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이 모든 사실을 아내에게 고백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사비나에게 옵니다. 이제 정말 완벽히 당신만을 사랑할 수 있어.. 그 순간 사비나는 이제 다시 자신이 떠나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적으로 알았어요.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격정적인 섹스 후에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쓸쓸해 졌고, 자신이 배신에 취해 들 떠 있음을 느꼈습니다. 배신은 그녀의 삶에서 무거워지지 않으려는 발버둥 같은 거였어요. 사람들로부터, 인생으로부터,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지켜내기 위해선, 그들을 결국 배신할 수 밖에 없었어요. 이것이 그녀에겐 구원의 형식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들을 구원하는 배신에 도취했다. 프란츠는 사비나를 타며 그의 부인을 배신했고, 사비나는 프란츠를 타고 프란츠를 배신했다.

결국엔 그녀의 삶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워져 버렸습니다.  살아가는 것과 사라지는 것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그녀의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앞으로 그녀가 살아내야 하는 시간은 너무도 길고 지쳐 보입니다. 왜 그렇게 도망치듯 살아야만 했을까요? 이렇게 살 수 밖에 없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게도 '그럴 수 밖에 없다 (Es Muss sein)'라는 변명이 적합할 수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거죠. 이건 자신의 인생에 대한 무거운 책임이기도 해요. 가벼워지고자 발버둥치는 의지의 이 무거움이란.... 

어느 날 사비나는 토마시의 아들로부터 토마시와 테레자가 어느 시골 마을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둘은 진심으로 행복했겠구나.... 그녀는 생각했어요. 그리고 또 어디론가 자신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떠납니다. 


프란츠

프란츠는 사비나의 연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비나가 아닌 테레자를 만났어야 했어요. 그래야만 그의 영혼이 안식을 찾을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운명이 어디 그러하던가요? 운명이란 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운명을 무겁지만, 숱한 우연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의미없는 확률같은 거라고 생각도 되요. 어찌되었던, 프란츠는 테레자가 아닌 사비나를 만났고, 그것은 운명이었습니다. 

프란츠는 삶의 모든 것을 걸고 사비나를 사랑했어요. 그는 사비나를 통해 비로서 자신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테레자가 토마시를 사랑했던 것처럼. 하지만, 사비나는 프란츠가 다가오면 다가올 수록 멀어져 갔고, 물과 기름같았어요. 한 그릇에 모여 있어 온 삶들이 부딪혀 사랑하지만, 결코 섞이지 못하고 어긋나는 사랑.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프란츠는 사비나의 진심을 얻지 못하는 것이 자신이 온전히 그녀에게 전념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했어요.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죄책감을 느꼈죠. 기어코 프란츠는 인생의 모든 것을 버리고, 사비나에게 옵니다. 이젠 눈치보지 않고 온전히 그녀만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고백하고, 더욱 뜨거운 밤을 보낸 다음 날, 사비나는 그에게 아무런 이야기를 남기지도 않은 채 도시를 떠나 버립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녀가 자신을 떠났는지.. 그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는 형언할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꼈고, 자신의 영혼이 진짜 자유를 만나게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프란츠는 태국으로 의료 반전 의료 봉사 활동을 떠났고, 거기서 좀도둑에게 칼을 맞습니다.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와 아내의 곁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저자
밀란 쿤데라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9-12-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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