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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Book Review 38 _ [군주론] - 니콜로 마키아벨리



" 구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던 모든 사람들이 개혁자에게 적대적이 되는 반면, 새로운 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게 될 사람들은 기껏해야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변화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혁신자를 공격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전력을 다하여 공격하는 데에 반해서, 그 지지자들은 오직 반신반의하며 행동할 뿐입니다." [군주론] 중에서

[군주론]은 공직에서 퇴출당한 마키아벨리가 재기를 노리는 메디치 가문의 군주에게 바치는 헌정사입니다. 시시탐탐 다시 공직으로 복귀하기를 갈망했던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세상을 정복하기 위한 조언과 덕목들을 정리한 이 책으로 군주의 마음을 사로잡아 다시 공직에 복귀하기를 갈망했습니다.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군주는 그의 어투를 거만하게 생각해서였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헌정사는 [군주론]이란 이름으로 이 세상에 남아 있고, 최초로 근대현실정치 사상을 정리한 인물로 역사에 기억되고 있습니다.

참 아이러니 하지요? 
세상은 자신이 뜻하는 대로 다 되지는 않는 법입니다. 누구나 희망을 꿈꾸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척박하고 미래는 희미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잘 하는 분야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했을 때 그 결과는 예상 밖의 훌륭함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운이 좋다면 그 생애에서 찬사를 받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진심이 이해되는 순간이 오리라는 것이죠.

마키아벨리는 현실주의적인 사람이었을 듯 합니다. 그의 말년에 모든 공직에서 퇴출되었을 때, 그의 상심은 매우 컸겠지요. 하지만 지금 당시의 공직에 있었던 사람은 고사하고, 당시 군주였던 인물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것도 이토록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의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하지만 그의 책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는 마키아벨리라는 이름과 그의 책 [군주론]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일입니다.

이제 다시 책이야기로 돌아갈까요?
솔직히 저는 현실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이 [군주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너무 속 보입니다. 너무 세속적입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만, 암튼 읽는 내내 편치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군주론]은 한번은 읽어야 할 책이었습니다. 정치학을 공부한 동생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도데체 정치의 속성이라는 것이 어찌되는 것인지, 인간이란 존재는 정치적으로 어떤 행동 양상을 보이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싶었습니다. 군주제는 더 이상 현실적으로 유효하지 않은 정치 체제이긴 하나, 정치를 움직이게 하는 그 동력은 동일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치가의 덕망과 그들의 생각을 읽어 봄으로써, 그들을 이해하는 폭을 더 넓힐 수 있다는 기대도 해 보았습니다. 개인적 욕망과 성취감으로 구역질나는 정치를 하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과연 저런 행동과 말이 어떻게 나올 수 있을 지 알고 싶었습니다.


암울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내가 그토록 역겹게 생각하는 정치적 행위들과 사고들이 '정치적'으로는 정당하고 윤리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일견 미덕 virtue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반면, 일견 악덕 vice로 보이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군주가 가져야할 덕목을 말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백성들에게 넉넉히 베풀지 말라.
때로는 잔인함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하라.
군주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약속을 지켜서는 안된다.
평화를 사랑하지 말고 전쟁을 주도하라. 


물론 몇 가지 조건과 단서들이 붙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성공한 권력자는 상기와 같은 도덕적 자질을 갖추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이러지 않고는 권력을 쟁취할 수 없고, 정치적으로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겁니다.

어떠세요? 당신은 그의 주장에 동의를 하시나요?
분명히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부분은 있습니다. [뉴라이트]로 대변되는 말도 안되는 정치적 사고를 이해하는 단초를 줍니다. 결국 그들은 우리와 다른 족속인 겁니다. 정말로 마키아벨리가 말하고 있는 성공적 권력자의 자질을 뼈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셈입니다. 속이고 배신하고 속박하고 착취하는 것이 맞는 거라고 진정으로 믿고 있는 겁니다. 마키아벨리는 현실 정치 속에서 진정한 영웅입니다. 

하지만, 난 도저히 그럴 수 없습니다.
난 정치인이 아닐 뿐더러, 현실이란 이유로 이런 비도덕적인 사고를 옳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현실이 그러하니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구요? 아닙니다. 역사는 이런 자들에게 의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했고 실천했고 투쟁했던 이들에 의해서 발전되어 왔습니다. 그리하여 완벽하지는 않지만, 오늘날의 민주주의 형태로까지 발전해 왔던 거지요. 그리고 실제로도 저러한 정치적 자질이 아닌, 인간적인 윤리와 철학으로 권력을 쟁취했던 사람들이 역사적으로는 더 칭송을 받아 왔습니다. 물론 그들도 모든 것에 다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마키아벨리의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너무 감정적으로 왔나요.
좀 마음을 추스리고 마무리를 해야 겠습니다.
그는 인간을 기본적으로 악하게 보고 있습니다. 인간은 서로에게 적대적입니다. 상대를 이겨야 내가 삽니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들이 써 지겠지요. 모두 다 나쁜 놈들이니, 그래도 내가 살려면 이렇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거죠. 물론 정치에 한정된 이야기이긴 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시작입니다. 정치에 대해서 우리 한번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 보자고 처음으로 손을 든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책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가치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러하겠지요.

개인적으로 이런 다짐같은 걸 해 봅니다. 
가슴 아프지만, 좋다. 이게 현실이니 받아들이겠다. 당신들을 이제 좀 이해하겠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세상은 변한다. 더 큰 물결이 있다. 작은 것들이 모여서 훨씬 큰 것이 되고 있다. 깜짝 놀랄 거다. 인간적인 삶을 꿈꾸는 작은 개미들의 거대한 흐름을 목격할 것이다 라고 말이죠.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 서울시장 투표하러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