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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고래] - 천명관 : 운명 앞에 너덜거리는 영혼의 이야기들

'그것은 자신이 살던 집보다 족히 서너 배는 됨직한 거대한 물고기였다. 물고기는 바다 한복판에서 불쑥 솟아 올라 등에서 힘차게 물을 뿜어올렸다. 
- [고래] 중에서 


 


천명관의 첫번재 소설 [고래]는 뭐라 정의하기 어려운 소설입니다. 
인생의 굴곡을 깨쳐 살아내는 다양한 군상 속에서 삶의 아픔과 외로움이 오롯이 묻어 납니다. 처절한 아픔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놀라운 이야기 속에서 슬프게 춤추는 소설입니다. 

금복
주인공은 금복과 그녀의 딸 춘희입니다.
금복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깨쳐 나갑니다. 자신의 욕망에 철저히 솔직하게 살아 냅니다. 평대라는 공간에서 그녀는 숱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려 발버둥 칩니다. 하지만, 끝끝내 그녀는 외로움 속에서 삶을 마감합니다.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야만 했을까요? 그것이 운명이라서? 아니면 자신도 알 수 없는 뭔가에 이끌려 살아내고야 마는 질긴 인연 때문에? 그저 평범하게 살 수 없었던 금복은 슬픈 과거를 떨치려 발버둥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그녀가 두려운 건 과거였다. 칼자국이 작살에 배가 꿰둟린 채 물 속으로 잠겨들던 시간이었으며, 폭풍우 몰아치던 밤이었다. 그녀가 진정으로 두려운 건.. 시간이 거꾸로 흘러 그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는 거였다.'

사랑에의 목마름은 결국 그녀를 남자로 만들게 했고, 자신의 꿈으로 형상화된 평대극장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죽음의 순간에 그녀는 눈물을 흘립니다. 굴곡진 인생을 돌아보며, 그녀는 비로서 자신을 내려놓고 쉴 수 있었을까요? 그러기를 바랄 뿐입니다. 

춘희
그리고 이야기는 춘희에게로 넘어 옵니다.
금복의 첫사랑이었던 남자와의 사이에서 남겨진 것은 춘희 였습니다. 하지만 춘희의 눈동자에서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은 그 남자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금복은 춘희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춘희는 기억하기 싫은 과거의 유산이었기 때문이고, 금복은 그 과거에서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춘희는 거대한 육체를 물려 받았으나, 그 속은 백지처럼 하얀 소녀였습니다. 세상과 소통되지 못했습니다. 자신 속에 침잠하여 작고 소중한 행복만을 바라는 순수한 영혼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를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숱한 고통과 힘겨움 속에서 그녀를 유일하게 붙잡았던 것은 과거의 추억 뿐이었습니다. 


' 춘희와 점보의 문답은 끝이 없었다. 그리고 광막한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아냈다. 그녀는 기억 속으로 여행을 떠남으로써 끔찍한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칠흑같이 어둡고 좁은 징벌방 안에서 마침내 자유를 찾아 냈던 것이다.'

금복은 과거를 떨치려 했고, 춘희는 과거 속에서만 삶의 위안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춘희는 평대의 벽돌 고장에서 외로움 외로움 속에서 죽어갑니다.


'몇 년이 흘렀다. 그녀는 홀로 벽돌을 굽고 있었다.
 다시 몇 년이 흘렀다. 그녀는 홀로 벽돌을 굽고 있었다.
몇 년이 흘렀다. 그녀는 홀로 벽돌을 굽고 있었다. 공장을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삶. 철저히 외로운 인생.
나는 그 무엇보다 이런 이미지에 가슴 아픕니다. 영화 [월E]의 로봇처럼, 혼자 남겨진 그곳에서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낍니다.  


운명과 외로움, 만남과 헤어짐, 자신의 모습대로 살고자 했던 영혼들의 파괴.
이런 것들이 소설 속에 피처럼 선명히 찍혀져 있습니다.
나는 소설 속의 인물들을 완벽히 공감하지 못하였으나,
이들의 삶이 처연히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천명관
아무튼,
[고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나가는 소설입니다.
쉴틈 없이 달려내는 천명관은 놀라운 이야기 꾼입니다.


고래제10회문학동네소설상수상작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천명관 (문학동네,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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