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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운명] - 문재인 : 다시 한번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며..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 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 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운명] 중에서

 


책읽기의 묘미는 이런 것입니다.
하나의 책을 읽으면, 그 책이 또 다른 책으로 인도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짜여진 커리큘럽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의 생각을 만들고 깊이를 만들어 나갑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중간중간에 다른 관심의 책을 읽으면서 너무 하나에 몰입되는 것을 막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책이 나의 흥미를 끌거나 작은 감동이라도 준다면, 또 그 책이 인도하는 길로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문재인의 [운명]은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닥치고 정치]는 조국교수의 [진보집권플랜]에서 시작되었구요. 그 이전으로 따지자면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체 게바라] 등 너무 많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문재인'이며 다시 '노무현'입니다.

이 책을 리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여기 저기로 생각의 갈래가 나누어지고 흩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떠오른 것은 왜 문재인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답변입니다. 또한 어떻게 해야만 다시 진보개혁정부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진실함에 대한 절절함입니다.

'나는 원칙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쭉 살아오면서 여러 번 겪어 봤지만, 역시 어려울 때는 원칙에 입각해서 가는 것이 가장 정답이었다. 뒤돌아 보면 늘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 땐 힘들어도 나중에 보면 번번이 옳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선 당시 정몽준 후보와의 마찰과 정체성의 차이로 인해 고민하던 노무현 후보에게 문재인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원칙대로 하자. 문재인 그리고 노무현은 원칙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의 생각과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들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인성이 이토록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세상이 그러한 사람이 살아가기엔 너무 타락해 버렸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이렇게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기 마련이고, 소위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이러한 원칙이 아닐까 합니다.

인권변호사 시절. 그의 지성을 각성시키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리영희 선생이었습니다. 그의 글을 읽고, 그는 지식인의 모습이 어떠해야 함을 배웁니다.

' 그것은 두려운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었다. 진실을 끝까지 추구하여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근거를 가지고 세상과 맞서는 것이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고, 진실을 억누르는 허위의식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이러면 다음에 읽어야 할 사람은 '리영희'가 되겠군요. 이미 도서관에서 '대화'를 빌려 놓은 상태이죠. 올해 마지막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의 중간에 이라크 파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도 이라크 파병은 잘못된 일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것을 옳지 못한 전쟁이었습니다. 무고한 시민을 학살했던 전쟁이었고, 명분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전쟁에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내서는 안된다고 믿었고, 그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국가경영'이 왜 어려운 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 문재인 뿐 아니라 당시 노대통령 역시 이 전쟁이 정의롭지 못한 것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이라크 파병을 하지 않는 것이 옳았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겁니다. 북한의 핵문제와 6자 회담을 성취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미국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겁니다. 좋건 싫건 그것은 여하튼 현실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당시 부시 정권을 설득하여 이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희생을 줄이기 위해 전투병력은 지원하지 않고, 최소한의 성의를 보임으로써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고자 하는 전략. 이것은 후퇴일 지 모르나 더 큰 것을 얻고자 하는 긴 호흡의 정책일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당시 이 사건으로 인해 참여정부는 진보 개혁 진영의 물매를 맞았고, 개혁 정체성에 대해 의심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비슷한 분위기의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노동과 교육에 대한 개혁 정책들이 노조와 전교조의 과도한 요구로 인해 오히려 개혁의 발을 잡히게 된 것이지요. 노무현 정권에 대한 기대가 많았던 것은 인정합니다. 그동안 억압받고 잘못되었던 것들을 지금 바로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겠지요. 그들의 요구를 노무현은 들어주고 만들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화가 났던 거죠. 배신감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이 그리 녹녹치 않았음을 문재인은 말합니다. 단계가 있다는 거죠.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지를 같이 논의하고 토론하며 서로 양보할 수 있는 것들은 양보해 가면서 큰 흐름을 잃지 않고 성취해 나가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진보 개혁 진영은 자신들의 입장과 원칙에서 한치도 양보하지 않고 있습니다. 크게 보았을 때에는 충분히 양보할 수 있는데, 그런 것들에 비장하게 나옵니다. 우리는 이것 아니면 절대 타협할 수 없다. 이 길은 우리의 길이 아니다. 진보 세력의 문제점은 그것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한꺼번에 바뀌지 않습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큰 그림에서 타협하고 협의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 밑바닥에 흐르는 도도한 보수적 풍토와 여론을 주도하는 강고한 보수세력 속에서 노대통령과 참여정부는 마치 '고립된 섬' 같았다. (중략) 다 합쳐도 소수를 넘지 못하는 진보개혁진영조차 그런 가운데 힘을 모으지 못하고 헤게모니 싸움 속에서 분열했다.'

문재인은 이런 안타까움을 여러 번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보수에 대해서는 많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진보개혁 진영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보개혁진영 전체의 힘 모으기'에 실패하면 어느 민주개혁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진보진영이 영원한 소수파로 머물지 않으려면 국가에 대해, 그리고 국가경영에 대해, 나아가서 외교안보문제에 대해서까지도 더 책임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 진보개혁진영의 통합이 만들어 지고 있다는 겁니다.
노무현은 이제 우리에게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정신은 살아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여태껏 가져봤던 그 어떤 정권보다 민주적이었고 개혁적인 정부 이후에, 우리는 이명박 정부를 견디고 있습니다. 가장 진보적인 정권 이후에 가장 보수적인 정권이 등장한 역사의 아이러니. 하지만 역사의 진보는 이러한 것일 겁니다. 가장 많은 전진 다음에 가장 깊은 굴곡이 생긴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더 앞으로 가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 문재인에게로 돌아와야 겠습니다.
김어준이 평가했듯이 그는 사사롭지 않은 사람입니다. 대의를 위해 스스로를 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노무현이란 사람을 운명처럼 만났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시대에 그는 무엇을 해야할 지 막중한 책임감 앞에 섰습니다.

'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 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른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 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사람사는 세상'을 간절히 바랬던 노무현.
그리고 그와 평생을 함께 했던 친구 문재인.
이 시대의 우리는 다시 한번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기에
어렵고 어려운 길이지만 반드시 성취해야 할 것입니다.


책 속에 소개되어 있는 도종환의 [멀리 가는 물]을 마지막으로 올려 봅니다.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렵혀진 물이나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 길을 가지 않는가
때 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리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은가.

'
운명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지은이 문재인 (가교,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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