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이야기

[데미안] - 헤르만 헤세 : 내 속에 솟아 나오려는 바로 그것을 살아 보는 것.

'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
[데미안] 중에서

중학교 때였던가요? 이미 기억도 가물가물한 시절..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던 그 시절에,
나와 우리의 영혼을 울렸던 이름이 있었습니다.
헤르만 헤세.
그의 [데미안]은 방황하던 우리에게 횟불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래.. 나를 찾아 가자. 공부가 무슨 소용인가? 어린 나이에 친구들과 술을 먹기도 하였고, 이유없는 방황 속에서 흔들려 했고, 어설픈 첫사랑에 가슴 아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그렇고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잊었습니다.
내 속에서 '싱클레어'와 '데미안'을 잊고 살아 왔습니다.

그리고 살아감의 어느 지점에서 다시 [데미안]을 펼처 들었습니다.

카인의 표적을 찾아, 자신의 속에 있는 그 무언가에 운명을 맡겨 버리고 방황하던 싱클레어는 어느 날 자신의 심상에서 나온 새 하나를 그립니다. 그는 그 그림을 데미안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데미안에게 짧은 쪽지를 받게 됩니다.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새, 알, 투쟁, 세계, 태어남, 깨뜨림, 신 그리고 압락사스...
싱클레어는 이 문장을 가슴에 새깁니다. 그리고 자신의 찾기 위한 힘겨운 여정을 계속합니다. 계속해서 무너지고, 흔들리고, 방황합니다. 답은 보이질 않고, 세상의 것들은 모두 무의미해 보입니다.
지독히 구원을 바랍니다. 끝없는 외로움 속에서 데미안을, 그리고 자신 속의 또 다른 자아이며 애인이며 신의 모습인 그녀를 갈망합니다.
그러자, 그 바람은 이루어집니다. 그 이루어짐은 이런 필연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런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거기로 인도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피스토리우스를 만나 삶의 위로를 얻고, 결국 데미안을 만납니다. 그리고, 가슴 속으로 정말로 간절히 만나기를 바랬던 그녀를 만납니다. 바로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
싱클레어는 그녀를 보고, 눈물을 흘립니다.

"어머니, 전 당시에 자주 생각했어요. 죽어야 겠다고요. 그 길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어렵습니까?"
그녀가 바람처럼 가볍게 손으로 내 머리를 쓸어넘겨 주었다.
"그건 늘 어려워요, 태어나는 것은요. 아시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를 쓰지요. 돌이켜 생각해 보세요, 그 길이 그렇게 어렵기만 했나요? 아름답지는 않았나요? 혹시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았던가요?"

그렇습니다. 싱클레어는 자신의 속에서 나오는 대로 살아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너무나도 외롭고 힘들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영원히 그 외로움이 사라지진 않겠지요. 하지만, 에바 부인의 말은 슬프고도 아름답습니다. 그 힘겨웠던 과정이 생각해보면, 다 그러해야만 했던 거라고. 그 길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을거라고 위로 합니다. 다른 길은 없었다고 머리를 쓸어 넘겨 줍니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보내던 싱클레어에게 세상은 또 다른 변화로 몰고 갑니다. 전쟁... 데미안과 에바부인과 이별하고, 싱클레어는 전장터로 나가게 됩니다.
부상을 당해 후송되던 그에게 꿈결처럼 데미안이 나타납니다. 데미안은 그에게 속삭여 줍니다.

"잘 들어. 나는 떠나게 될꺼야.. 이제 나는 그렇게 달려 오지 못해.. 그럴 때 넌 네 자신 안으로 귀기울여야 해.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 듣겠어?"

그리고 에바부인의 키스를 전해 줍니다.

눈을 뜬 싱클레어는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영원히 그들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예전의 그가 아닙니다. 그 속에는 데미안이 에바 부인이 살아 있어, 내면의 자신과 하나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붕대를 감을 때는 아팠다. 그때부터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어 완전히 내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거기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면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거기서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Er)와.'

싱클레어가 갑자기 꿈뜰거리며 살아, 내 속에 들어온 듯 느껴집니다.
더 깊은 안으로는 틀림없이 데미안이 살아 있을 터입니다. 그 옆에는 에바 부인의 부드러운 숨결이 흔들릴 것입니다.
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야
어린 나이의 그 방황이 감싸집니다.
이제야 조금이나마, 그 알싸한 추억과 아픔에는 다른 길이 없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직 내가 아닙니다. 내겐 아직 '카인의 표적'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니, 내 속의 새가 나올 수 있도록 나를 감싸고 있는 세상을 깨어 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 알을 깨어 버리기 위해 '투쟁'해야 할 터입니다. 그리하여 그 새가 신에게 나아갈 수 있도록.
압락사스
라는 신에게로.
선과 악이 공존하며, 온전히 스스로이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상하는 그 위대한 신에게로.

데미안(세계문학전집44)
카테고리 소설 > 소설문고/시리즈
지은이 헤르만 헤세 (민음사, 2009년)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