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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조지 레이코프 : 왜 평범한 서민들이 부자와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 정당에 투표할까?

' 프레임(Frame)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중에서

 


조지 W 부시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 이후에 세금 구제 (Tax Relief)라는 구호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구호는 4년 이후 선거에서도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 구호가 되었죠.
'세금'이라는 단어와 '구제'라는 단어는 전혀 연관성이 없습니다. 하지만, '구제'라는 단어가 제공하는 이미지는 누군가를 불의와 억압으로부터 건져낸다는 긍정적인 메세지를 은유하고 있습니다. '세금'이라는 단어가 '구제'라는 단어와 함께 쓰임으로써, '세금'이란 것이 착취당하고, 옳지 않은 것이라는 느낌을 전달하게 됩니다. 따라서 '세금 구제'를 반대하는 세력은 나쁜 세력, 부정적인 세력이 되는 것이고, '세금 구제'를 주창하는 세력은 옳고, 불의에 대항하는 영웅의 이미지를 그리게 됩니다
더 커다란 문제는 당시 민주당에서 '세금 구제'라는 용어를 그대로 인용하여 반론을 제기하였다는 것입니다. 한번 굳어진 이미지는 변경하기 어려우며, 그 틀 안에서 반대파에서 아무리 이런 저런 반론을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합리적으로 대중을 자기 쪽으로 끌어오기는 힘들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프레임 (Frame) 입니다.

조지 레이코프는 인식론에 근거한 언어학자입니다. 보수당인 공화당의 반대편에 서서 진보적인 세력들의 의견과 구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행동가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매우 쉽게 쓰여져 있습니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아주 간략한 메세지를 전달합니다.
대중은 생각하는 것만큼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거죠. 구체적인 사실 여부를 따지기 보다는 한번 굳어진 자신의 가치관이 투영된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한 가치관에 호소하는 것이 프레임 이론입니다.

' 계몽주의와 함께 탄생한 이 신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존재이므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 주기만 하면 그들은 옳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라는 가정으로 시작합니다. (중략) 그러나 인지과학에 따르면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한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투표한다. 그들은 자기가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에게 투표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자신의 경제적 (또는 계급적) 이익에 반하는 정당이나 후보에게 투표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죠.
생각해 보세요. 시골의 우리 부모 세대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FTA를 성사시키고자 노력하는 정당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왜냐구요? 그것이 하나의 프레임으로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한국의 경우, 남북대립이라는 특수성까지 추가됨으로써, 70년대의 고도 성장과 안보의 이미지가 교묘히 결합하여 불가역한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는 겁니다.

조지 레이코프는 비유의 상징으로 공화당은 '엄격한 아버지'상을, 민주당은 '자상한 부모'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미국의 경우 보수는 자신들의 논거와 정책들을 '엄격한 아버지'상에 철저히 맞추어 나간다고 합니다. 프레임을 이용하는 것이죠. 그들의 가치관을 이용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에 이미 그 구호의 이미지를 받아들이게 하는 겁니다. 진보세력의 경우, 이런 정책적 수립과 호소가 약하고 조직되어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 현실에 '엄격한 아버지상'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기독교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권력화되고 거대화된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기독교의 이미지, 즉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교리를 이용합니다. 높은 사람은 우리가 따라야 할 대상이다. 그들은 우리를 이끌고, 선한 곳으로 안내하는 존재이다. 그러니 그들을 따르고, 그 결과로 우리는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겁니다.
더군다나 지금 우리의 대통령은 기독교의 장로입니다. 그의 정책과 행동이 우리의 이익을 저해하고, 당연한 권리를 해치는 대도 불구하고, 기독 보수 단체들은 그를 지지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장로이고,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추앙합니다. 그래도 그는 기독교의 장로이다. 하나님의 종이다. 그러니, 그를 믿어야 한다라는 프레임.
답답하지만, 이 것이 현실이라는 겁니다.

역자인 유나영씨는 옮긴이의 후기에서 몇 가지 조언을 합니다.
조지 레이코프의 주장에도 어느 정도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네요.

' 그가 몇 마디 말에 놀아나는 우중으로 유권자들의 수준을 경시하며, 깊이 있는 정책을 고민하기 보다는 눈에 번쩍 띄는 몇몇 슬로건으로 겉만 그럴듯하게 치장하도록 유도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가 역설하는 인지적 방법론과 인지과학 이론들은 오늘 날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데 아주 요용한 도구를 제공한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합니다.
아주 쉽게 쓰여진 이 글은, 보수 및 진보 신문들에 드러나는 주요 헤드 라인을 이해하고 그 이면을 바라보는 단초를 선사합니다.

그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답답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게 당연하니까요.
이런 저런 사실들을 열거하며, 당신이 틀렸으니 내 말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젠다를 먼저 선점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사안을 이끌고 갈 수 있는 프레임을 우선적으로 잡을 수 있다면, 승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최근 가장 유효했던 진보측 진영의 프레임은
'무상 급식'과 '반값 등록금'입니다. 
보수 쪽에서 이런 저런 이유를 내세우며 이 두가지의 아젠다를 공격하였지만,
한번 굳어진 프레임 내에서의 공방에서 진보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현실 정치를 이해하는 데 아주 유용한 책이었음을 부정하기 힘듭니다.

코끼리는생각하지마
카테고리 정치/사회 > 정치/외교
지은이 죠지 레이코프 (삼인,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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