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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차를 뭐하러 사세요? "소유의 종말 / 제러미 리프킨"> by "안마담의 책"

자본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념의 시대가 막을 내린 뒤, 자본의 힘은 더욱 강력해지는 느낌입니다. 자본의 기본적인 속성은 소유에 있습니다.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원초적인 욕망이 많은 가치들을 압도하고 있어요. 이런 시대에, 13년 전 제러미 리프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유의 종말이 온다"고!



소유의 종말에 대한 근거는 이렇습니다. 


- 시장이 네트워크에 자리를 내주어, 소유의 패러다임이 접속으로 바뀌고 있다.

- 세상은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다. 

- 제품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는 세상에서, 서비스의 영역은 네트워크 경제에서 물건보다는 사람에 중심을 둘 수 밖에 없다. 


최소한의 생활 필수품을 제외한 집, 자동차, 가전제품 등은 그 소유의 가치가 점점 하락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기는 합니다. 재산의 척도로서의 부동산의 가치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직장과 삶의 영역의 변화가 심하고 확대되는 상황에서 부동산이 오히려 생활의 발목을 잡는 경우를 많이 목격하고 있잖아요? 자동차 역시 4~5년을 타고나면, 감가상각이 다 끝나 버리고, 새롭고 멋진 신모델들이 세상에 넘쳐 납니다. 리스같은 형태의 자동차 비즈니스가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잖아요? 이미 미국 유럽의 경우 공유경제의 확대로 인해 자동차를 공동 사용하는 사례와 비즈니스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휴대폰은 또 어떤가요? 몇 달이 멀다하고 신모델이 쏟아지지 않나요? 핸드폰을 새로 구입할 때도 제품의 원가를 다 지불하고 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약정 기간을 계약하고, 임대하는 형태나 다름 없잖아요? 저도 지금 무려 30개월의 노예 계약에 묶여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30개월 후에는 얼마나 새로운 신제품들이 세상에 나오겠어요?


그렇다면, 새로운 가치는 어디서 만들어지는 걸까요?

연결을 통해 이루어지는 관계 속에서 다양한 부가가치와 서비스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집단지성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사례입니다. '페이스북' '트위터'는 공간과 지리적 한계를 넘어서 사람들을 연결해 줌으로서, 완전히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잖아요? '유튜브' 를 통해서 세상에 전달되는 수많은 컨텐츠들은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습니다. 다 아시는 이야기지만, '유튜브'가 아니었다면, 문화 변방의 한국의 B급 문화 가수인 사이가 이렇게 뜰 수 있었을까요? 


결국 제러미 리프킨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런 겁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은 변함이 없을 것이지만, 소유를 통해서 얻는 욕망의 충족보다는 공유와 접속을 통해서 취할 수 있는 만족감이 더욱 커지는 세상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무려 13년 전에 이런 얘기를 한 겁니다. 대단하지 않나요?


책에서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겁니다. 이게 뭐냐면, 세상의 어떤 존재도 정지되어 있거나 확정되어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원리에요. 그래서 "존재와 운동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결국 사물은 시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서만 존재하게 된다" 라는 철학적 결론에 도달하게 되죠. 그러면,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재산은 어떨게 될까요? 평균적으로 보면, 내가 소유한 나의 것들은 실체로서 솔직히 의미가 있습니다만, 진짜 진리가 뭐냐하면, 시간 속의 관계 속에서 변화되는 이 모든 것들을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물리적 경제선이라는 것이 사회적 허구로서만 존재하는 세계에서 어떻게 내 것과 네 것을 구별할 수 있다는 말인가" 라는 명제도 가능합니다. 좀 어려운 얘기죠. 그렇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진짜 그렇다는 겁니다. 이게 진짜 불편한 진실이라는 거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취해야 할 생각의 전환은 무엇인가요?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완전히 변하지는 않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다른 세상이 되어갈 겁니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더 이상 아닌 겁니다.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변화 밖에 없는 세상"이라고 제러미 리프킨이 규정한 세상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자시의 삶에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뒤쳐질 수 밖에 없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변화가 항상 옳은 방향으로 가는 법은 없습니다. 변화의 지향성은 무작위입니다. 다만, 변화의 속성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자신의 태도를 맞추어야 하는 겁니다. 


또한 접속과 연결의 속성이 가지는 놀라운 창조력을 주시해서, 과연 사람과 사람들, 문화와 문화들이 만나고 부딪히고 변형되고 엉켜지는 과정에서 만들어나가는 완전히 새로운 것들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 시켜 나갈 지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아에 대한 정의마저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자아는 고정된 그 무엇이 아닙니다. "새로운 자아는 끊임없이 갱신되고 재편집되는 이야기의 전개로 여겨질 수 있다"는 제러미 리프킨의 주장에 우리가 귀기울려야 합니다. 


내 주위를 돌아보세요.

나는 내가 속한 곳에 얼마나 얽매여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내가 가진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또는 소유하고자 하는 그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자신의 삶을 쓰고 있는 지 돌이켜 보세요. 새로운 세상은 그런 것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눈을 돌려 보세요. 조금만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세요. 다른 것들이 오고 있습니다. 이미 바로 앞에 와 있습니다. '소유의 종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유의 쇠퇴'가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차를 팔거나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 당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