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피로 사회] - 한병철 / 닥치고 꽃이나 보러 떠나자.

잇츠맨 2012. 4. 1. 08:15

'활동 과잉은 다름 아닌 정신적 탈진의 증상일 뿐이다'
[피로 사회] - 한병철

한병철 교수의 이 짧은 철학 에세이는 성과주의에 빠진 우리의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는 프레임을 제공합니다. 지난 세기 면역학적 시대 (규율 사회) 에서는 낯선 이질적인 것을 제거의 대상으로 바라보지만, 21세기 '성과 사회'에서는 과도한 긍정성의 포화로 인해 스스로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피곤한 사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성공을 향한 질주는 당연한 과제이며, 우리의 멘토는 이 시대의 성공한 사람들이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우리는 문득 외롭고 서글픈 자아를 만나게 됩니다. 열심히는 살고 있는데, 뭔가 부족하고 허전합니다. 외롭고 서글픕니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부지런히 뭔가를 하고는 있는데,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우울합니다. 사회가 우리를, 우리가 스스로를 옭조인 결과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저자는 '자기 착취'라고 부릅니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데, 내가 스스로를 고갈시키는 겁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성공할 수 있고,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면 뭔가를 이룰 수 있다고 계속 채직질을 해댑니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부럽다고 말합니다. 나도 저렇게 살아야 겠다고, 좀 더 부지런 해야 겠다고 거울을 보며 다짐합니다. 그런데, 이게 정답일까요? 정말 나답게 사는 방법인가요? 


'활동 과잉'은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는 습성으로 발생됩니다. 긍정의 세례를 받고 무한히 커진 자신감이 스스로를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중단하지 못합니다. 멈추지 못하고, 앞으로만 달려 나갑니다. 반추하지 못하는 삶, 사색하지 않는 삶은 정신적 탈진을 촉진합니다. 이건 아니라고 말하는 힘을 잃은 전차는 전복의 위험을 안고 엄청난 속도로 인생의 철로를 내달립니다. 결국은 공허한...


활동 사회 (성과 사회)는 이제 도핑 사회로 발전해 나간다고 말합니다. 


'성과사회, 활동 사회는 그 이면에서 극단적 피로와 탈진 상태를 야기한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부정성의 결핍과 함께 과도한 긍정성이 지배하는 세계의 특징적 징후이다. 그것은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을 전제하는 면역학적 반응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해 유발되기 때문이다. 과도한 성과의 향상은 영혼의 경색으로 귀결된다.'


두 가지 힘이 있습니다. 

하나는 긍정의 힘이고, 또 하나는 부정의 힘입니다.

긍정의 힘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고, 부정의 힘은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입니다. 부정의 힘이 동반되지 않는 긍정의 힘은 삶을 고갈시킵니다. 멈출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달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바쁜 일상을 살다가 갑자기 주말에 할 일이 없어지면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입니다. 진짜 문제는 그게 병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진짜 성공이 무엇인가요? 성과를 내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가요? 돈을 많이 벌고, 인정을 받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삶을 풍성하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멈추어 서야 합니다. 

무위의 가치를 깨닫고, 삶을 즐겨야 합니다. 

봄입니다. 

봄에는 닥치고 가족과 함께 꽃구경이나 가야 합니다.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나요?



나무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 벚나무는 지금

큰 가지에 꽃으로 잔뜩 장식하고

숲의 승마 길 옆에 서 있나니

부활절에 알맞은 하얀 옷이다.

 

내 정해진 일흔이란 수명에서

스물이란 나이는 두번 다시 안 오나니

일흔 번의 봄에서 스무번을 뺀다면

앞으로 올 봄은 쉰 번뿐이다.

 

흐드러지게 핀 꽃을 보기에는

쉰 번의 봄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매

이제 숲을 찾아가기로 하자.

눈처럼 희게 핀 벚꽃을 보기 위해서.


하우스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