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엔돌핀 <수요레터>

지브리 스타일이 SNS를 뒤덮다

잇츠맨 2025. 4. 2. 14:51

안녕하세요, 촌장입니다.

 

제 인생의 애니메이션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를 꼽습니다.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는 비행선의 짜릿한 감성은 지금보아도 가슴을 흔들게 만듭니다. 198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고 풍부한 감성을 담고 있죠. 미야자키 하야오만의 철학과 감성, 그리고 음악. 무엇보다 그만의 작화 스타일은 탁월합니다. 그의 모든 작품들 속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이덴티티가 묻어 있죠.

 

<천공의 성 라퓨타>를 처음 봤던 어린 시절, 하늘의 구름만 봐도 가슴 설레였었다. (출처 : 지브리 스튜디오)  

 

 

 

#갑자기 SNS 피드에 지브리가 점령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들이 SNS 피드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오픈AI가 ChatGPT의 이미지 생성 기능을 선보이면서 였기 때문인데요. 사용자들은 ‘무슨무슨 풍으로 그려줘’ 라는 프롬프트를 이용해 다양한 스타일의 이미지를 생성하고 있습니다. 그 중 단연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이 바로 ‘지브리 스타일’ 입니다. 자신의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으로 바꿔주는 변환 작업이 너무 쉽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그 결과물이 꽤나 탁월하고 놀랍습니다. 지브리 스타일은 이제 하나의 밈을 넘어 광풍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SNS 피드에 온통 지브리 스타일의 이미지들로 넘쳐 난다.

    

 

#GPU가 녹고 있어요 (feat 샘 알트먼)

실제로 이 기능은 ChatGPT 이용자 수의 급증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데이터 플랫폼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3월 27일 기준 국내 ChatGPT의 일간 활성 이용자 수(DAU)는 125만 2,925명으로 역대 최다치를 기록했습니다. 이 같은 급증은 GPT-4o의 이미지 생성 기능 추가가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놀이는 분명 매력적입니다. 자신의 세계가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손끝에서 재탄생한 듯한 착각을 주니까요. 하지만 이 열풍을 보며 저는 조금은 조심스럽고,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샘 알트만의 X 포스팅. GPU가 녹아내리고 있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최근 저작권 논란으로 무료 사용자에 대한 기능 오픈은 잠정 중단된 상태이다. (출처 X)

 

 

 

#무슨 데이터를 사용했을까?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지브리 스타일’은 분명히 원작의 감수성과 형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기반이 되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수많은 장면, 작화, 채색, 연출, 그리고 무드보드와 같은 방대한 창작의 축적물입니다. 물론 OpenAI를 비롯한 기업들이 어떤 학습 데이터를 썼는지는 명확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브리 관련 이미지가 다량 포함됐으리라는 추정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스타일의 구현은 원작자의 고유한 시각언어를 '무단 차용'한 결과일 수 있는 것이죠.

 

지브리의 이미지들을 학습에 사용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이를 사전에 지브리 스튜이도의 허락을 받았는지는 불명확하다. 아마도 저작권 협의는 없었으리란 분석이다. (출처 : 지브리 스튜디오)

 

 

#스타일도 저작권인가?

 

실제로 지금 여러 아티스트들이 생성형 AI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내 작품이 무단으로 학습에 쓰였다"는 문제 제기부터, 스타일 자체에 대한 권리 주장을 하는 경우까지 점점 확장되고 있죠. 그 중에는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포함돼 있고, 이들의 소송은 단지 '이미지 카피'의 문제가 아니라 '스타일의 고유성'을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스타일을 너무 쉽게 소비하고 복제합니다. 하지만 스타일은 단순한 겉모습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과 노동, 철학과 실험, 그리고 수많은 실패 끝에 만들어진 작가의 지문이자 흔적입니다. 지브리의 스타일이 아름다운 이유는 단지 그것이 예뻐서가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태도와 정성, 세계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는 그 만의 감성이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철학이 담겨져 있다. (출처 : 지브리 스튜디오)

 

 

#모방은 창작의 시작?

 

물론 이런 시각도 가능합니다. 창작은 모방의 과정 속에 있다는 전제이지요.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도 있죠. 하지만 이런 창작의 과정도 자신만의 아이덴티티가 존재할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전 것을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승화하는 과정이 있어야만 또 다른 새로움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ChatGPT의 이번 기능은 무차별한 복제 말고는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모방이 창조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ChatGPT의 이미지 변환 기능은 창작의 과정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재미있잖아? 그런데..

그렇기에 우리는 이 유희가 가진 이면도 함께 바라봐야 합니다. 즐거운 놀이이긴 하지만, 단순히 그냥 재미로 얻어지는 유익보다는 무차별적인 오리지널 침해의 과정들을 통해 확산되는 불법과 피해가 오히려 더 심해지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이 스타일 구현 기능은, 어떤 자료를 학습했는지 모른다는 불투명성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결과물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그 배경과 과정, 그리고 윤리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이번 ChatGPT의 이미지 생성 기능은 큰 히트를 쳤다. 사람들의 감성을 제대로 건드린 셈이다. 샘 알트먼은 X의 프로필을

         지브리 스타일로 변경한 자신의 이미지로 변경하기도 했다. (출처 : X)

 

 

 

‘지브리풍으로 바꿔줘’라는 한 줄의 요청이, 오히려 창작자의 오랜 노력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노력들이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존중은 그의 스타일을 카피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다음 수요레터에서 또 인사드릴게요.

 

촌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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