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촌장입니다.
- 오랜만에 책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책 이야기에 앞서 최근 화제가 되었던 영상 하나를 소개해 보려 합니다.
- 지난 5월 8일에 아주 흥미로운 영상이 소개가 되었는데요. 미국 플로리다의 센트럴플로리다 대학교(UCF)에서 졸업식에서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 인문예술대학과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대학 졸업식에 외부 연사로 초대된 글로리아 콜필드라는 부동산 개발사 임원이 연단에 올라 "AI는 다음의 산업혁명입니다"라고 말했죠.
- 그 순간 강당 전체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습니다. 연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무슨 일이죠? 제가 거슬리는 말을 했나요?"라고 묻습니다.
- 그리고는 이어서 한 마디를 더 보탰는데요. "몇 년 전만 해도 AI는 우리의 삶에 끼어들지 못했죠." 그제야 졸업생들이 환호했습니다.
왜 졸업생들은 AI에 관련된 얘기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했을까요?
- 최근 통계들이 직업 시장의 변화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 미국의 해고 추적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4월 한 달 동안 미국에서 발표된 해고 88,387건 중 21,490건, 즉 약 4분의 1이 AI를 직접적인 사유로 들었다고 합니다. 3월에도 비슷한 수치였고요. 메타는 4월에 7,800명, 마이크로소프트는 작년에 6,000명을 해고했죠.
- 새로 사회에 나가려는 청년들의 사정은 더 나쁩니다. 교육 기술 기업 셍게이지(Cengage)의 보고서를 보면 2024년 졸업생의 41%가 풀타임 직장을 구한 반면, 2025년 졸업생은 30%만이 풀타임 직장을 구했다고 합니다. 1년 만에 10%포인트 넘게 떨어진 겁니다.
- 꼭 이런 데이터가 아니더라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AI로 인한 일자리 감소의 소식은 암울하기만 합니다.
- 그래서 어쩌면 지금이야 말로 일이란 무엇이고, 직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그래서 오늘 수요레터에서는 이런 AI 시대에 일과 직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 한 노학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 찰스 핸디가 쓴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입니다.
- 그럼 시작해 볼까요?

노철학자가 손주들에게 남긴 21통의 편지
- 먼저 찰스 핸디가 누구인지 간단히 살펴봐야겠죠?
- 찰스 핸디(Charles Handy). 아일랜드 출신의 경영사상가이자, 스스로를 사회철학자라고 불렀던 사람입니다. 옥스퍼드에서 고전과 철학을 공부했고, 다국적 석유회사 셸의 임원으로 일하다가 50세 즈음에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런던경영대학원을 거쳐 독립적인 사상가의 길을 걸은 분입니다. 피터 드러커, 톰 피터스와 함께 경영사상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고요.
- 그의 이력이 흥미로운 것은 20년 이상 기업에서 근무한 배경에 있습니다.
- 처음부터 학자라던가 교수가 아니었죠. 오랜 기간 회사에 소속된 사람으로 우리처럼 직장인의 비애와 어려움을 잘 이해한 인물이었습니다. 나름대로 회사에서 성공하여 임원까지 되기는 했지만, 회사에서 맡은 자신의 일을 자신의 천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그는 자신이 원하고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고, 50세가 넘은 이후에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은 인물입니다.
- 찰스 핸디는 2024년 12월 13일,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그의 나이 86세에 손주들과 다음 세대를 위해 쓴 책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 소개할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입니다.
- 일, 성장, 돈, 시간, 인간관계, 교육, 결혼 같은 주제를 넘나드는 스물한 통의 편지를 엮은 책인데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후의 세대에게 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를 편지의 형태로 담고 있습니다.
-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제목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오랜 세대를 거치며 기술 혁명은 항상 일어났고, 우리의 삶과 사회와 경제를 변화시켰다. 그 모든 변화는 두려움으로 혹은 호기심으로 다가왔지만, 개인이 감당하기에 늘 벅차고 힘겨웠던 것도 사실이다. 기술 혁신의 형태나 내용은 달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변화가 우리의 삶에 던지는 근원적인 질문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는 말이죠. 번역본의 제목이 참 적확하다 싶습니다.
- 그가 던지는 첫 질문은 이렇습니다.
왜 우리는 아침마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야 하는가.

- 단지 직장이 있어서 출근해야 할 목적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그 무언가가 있느냐라는 물음인 거죠.
일(Work)과 직업(Job)은 다르다
- 핸디의 이야기는 일과 직업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보통 우리는 일과 직업을 다른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직업으로 하는 게 일이지 뭐 다른 게 있나 라는 거죠.
- 하지만 핸디가 평생을 두고 말해온 것 중 가장 중요한 구분은 일(work)과 직업(job)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 직업은 일이 제도적으로 굳어진 형태입니다. 회사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는 그 자리. 명함에 적힌 직책으로 표현되는 그것. 사람들이 나를 인식하는 사회적인 명칭이 바로 직업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사실 이것, 직업의 소멸이죠.
- 그러면 일(work)는 무엇인가요? 일은 자신이 하고 있는 사회적 활동을 지칭합니다. 직업을 통해서 하는 일도 여기에 포함되지만, 직업이 아닌 다른 활동들도 모두 다 여기에 속합니다. 그러니 일은 직업을 포함하는 훨씬 더 큰 개념입니다.
- 그래서 “직장을 잃었다"와 "할 일이 없다"는 같은 말 같지만 전혀 다른 사건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 둘을 혼동하면서 살아가요. 회사를 그만두면 갑자기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빠지는데, 핸디는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이 잃은 것은 정말로 일인가요, 아니면 직장인가요? 직업은 바뀔 수 있습니다. 있다가 없을 수도 있죠. 하지만 일이 사라지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허망함을 느낍니다.
- 일과 직업은 분명히 깊이 연결되어 있지만, 다릅니다.
- 그래서 시대가 바뀌면서 유망한 직업은 바뀔 수 있습니다. 바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직업이 사라지고 변화되는 것은 그냥 현상으로써 받아들여야 합니다. 평생의 직업은 그래서 불필요할 뿐 아니라 사실 불가능한 개념입니다. 직업의 변동성이 이렇게 극대화되면 무엇이 남을까요? 그렇죠. 바로 일이 남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그 일을 통해서 나를 구현하고 발견하고자 하는 그 행위와 행동이 남는 거죠.
- 우리는 일과 직업을 구분해야 합니다.
- 직업은 여러 개 가질 수 있고, 당연히 그러해야 합니다. 있을 수도 있고 때에 따라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질 수도 있고, 어쩌면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지는 것이 앞으로의 트렌드에 맞을지도 모릅니다.
시그모이드 곡선과 포트폴리오 경력
- 그러면 자연스럽게 찰스 핸디가 주장한 포트폴리오 경력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찰스는 한 사람이 한 직장에 평생을 거는 시대는 끝났다고 진단합니다. 한 진장에 평생 매이는 대신,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쪼개어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며 스스로의 삶을 설계하는 고용 형태를 제시하는 것이 포트폴리오 경력입니다.
- 그는 일을 네 가지로 나누어 균형 있게 엮어가라고 권하고 있는데요. 임금 노동, 전문직 활동, 자원봉사, 가사. 이 네 가지가 각자의 비중을 가지고 한 사람의 삶을 구성한다고 봅니다.
- 일과 직업의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임금 노동과 전문직 활동입니다.
- 일과 직업을 동일시하는 입장에서는 임금 노동과 일은 다르지 않습니다. 일의 전부가 임금 노동이 되는 거죠. 하지만, 자신의 장점과 하고 싶은 것들을 조합해서 활동할 수 있는 영역들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만의 전문직 활동이 됩니다. 전문직 활동은 임금 노동의 연장선 상에 있을 수도 있고, 아예 다른 분야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상관없죠. 다만 자신이 좋아하고 흥미롭고 잘할 수 있는 영역이야 합니다.
- 임금 노동과 전문직 활동을 병행하면 직업이 아니라 일의 내용이 훨씬 풍성해집니다. 그러면 임금 노동의 위치, 즉 직업의 위기에 닥쳤을 때에도 전문직 활동을 통해 대처할 가능성과 기회들이 생깁니다. 자연스럽게 전문직 활동이 그다음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 핸디의 또 다른 책 <텅 빈 레인코트>에서 시그모이드 곡선이라는 개념을 가져왔는데, 바로 앞서 얘기한 내용을 개념화한 겁니다.
- S자 모양의 곡선인데요. 모든 성공한 시스템은, 그것이 기업이든 산업이든 한 사람의 경력이든, 이 곡선을 따라간다는 겁니다. 처음엔 더디게 학습하고 실험하는 시기를 보내다가, 어느 순간 가파르게 성장하고, 정점에 도달한 뒤에는 결국 내리막을 만나죠.
- 핸디의 핵심 통찰은 이 곡선이 내려가기 전에, 정점에 도달하기 전에 두 번째 곡선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첫 번째 곡선이 잘 굴러가고 있을 때가 가장 좋아 보이는 그 시점이, 사실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할 때라는 거죠. 내리막이 시작된 뒤에 시작하려고 하면 이미 자원도 신용도 바닥난 상태라 다시 일어서기가 어렵습니다. 그게 전문직 활동입니다. 개인에겐 작은 취미로 시작할 수도 있는 거고, 기업에겐 스몰 프로젝트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메인 곡선 (임금 노동)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기 전에 준비하고 대응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겁니다.

에우다이모니아, 그리고 일할 권리
- 핸디가 즐겨 인용한 그리스어가 있습니다.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입니다.
- 흔히 행복으로 번역됩니다. 하지만 핸디는 이 단어를 일반적으로 말하는 행복이 아니라 전명(全命)" 또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함"으로 옮기는 게 더 정확하다고 봤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의 가장 좋은 상태죠. 단지 즐겁다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능력을 충분히 펼치며 살아가는 그 상태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우다이모니아’이고, 우리는 막연한 행복이 아닌 ‘에우다이모니아’적인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 에우다이모니아를 추구하려면 우리에겐 참다운 일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하고 싶은 그 일 말이죠.
- AI가 발전하면서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마주하기 시작한 질문이 있습니다. AI 기본소득입니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지니, AI가 만들어내는 부의 일부를 사회에 분배해서 모두에게 기본 생활을 보장하자는 논의입니다.
- 영국 투자부 장관이 작년에 공식적으로 제안했고, AI 커먼즈 프로젝트라는 비영리단체는 이미 AI에 영향을 받은 노동자 수십 명에게 매월 1,000달러를 1년간 지급하는 실험을 시작했죠. 샘 올트먼은 한때 강하게 지지하다가 최근에는 "단순한 현금 지급보다는 AI 부의 공유라는 더 큰 틀이 필요하다"고 입장을 살짝 바꾸기도 했습니다.
- AI 기본소득 자체는 의미 있는 논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정 소득을 제공해 준다는 것에서 이 논의가 멈춰서는 안됩니다. 핸디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소비할 돈은 있지만 할 일이 없는 삶이 과연 얼마나 지속성이 있을까요? 그건 인간으로서의 어떤 권리를 빼앗긴 상태에 가깝습니다.
- 에우다이모니아의 행복, 자기 능력을 펼치며 살아가는 그 권리를 앗아간 사회는 잘못된 방향입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일을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연결되고, 세상에 흔적을 남겨왔습니다. 그 통로가 단지 효율성의 이름으로 사라진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자신을 설명하게 될까요.
새로운 것을 시도하라
- UCF 졸업생들이 야유로 표현한 감정의 본질은, 어쩌면 일자리를 잃는다는 두려움 너머에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4년 동안 갈고 닦은 능력을 발휘할 자리, 자신이 사회에 무언가를 보탤 자리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더 깊은 불안. 돈으로 채워질 수 없는 자리 말입니다.
- 그래서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런 거 아닐까요. 효율성만을 좇는 세상에서, 인간이 일할 권리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직업이 사라지더라도 일은 남아야 하고, 그 일을 통해 자신을 펼칠 권리는 모두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 이 문제는 기본소득의 문제이기 이전에, 인간 존엄의 문제로 인식하고, 개인의 성장을 지원하는 사회로의 이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참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변화는 늘 버겁지만, 요즘은 더 힘겹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하거나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무언가를 해야지 살짝이나마 그 길이 보이는 법이죠.
- 찰스 핸디는 책에서 이렇게 조언합니다.
내가 깨달은 바에 따르면 삶은 발견의 여정, 즉 자아를 발견해 가는 여정이다. 하지만 너희가 안전하고 익숙한 길을 고수하면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정에는 목적지가 있지만, 탐험가들은 무엇을 발견하고 어디에서 끝날 것인지를 명확히 정하지 않는다. 삶도 이런 탐험과 유사하다.
찰스 핸디의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면 수요레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너희
자신을 믿어라. 실수하는 걸 두려워 하지 말라. 너희에게 희생을 요구하더라라도 정직해라. 또 할 일이 있고, 사랑할 사람이 있고, 기대할 것이 있을 때 행복 (에우다이모니아) 하다는 걸 명심하라.
촌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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