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촌장입니다.
- 얼마 전 Salesforce가 'Headless 360'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한 시대의 SaaS를 이끌어 온 회사가 자신들의 핵심 전략에 '머리가 없다(Headless)'는 단어를 붙인 것이죠. 여기서 머리란 우리가 화면을 통해 마주해온 UI를 뜻합니다. 버튼, 메뉴, 클릭할 수 있는 표면을 모두 들어내고, API와 명령만으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겠다는 선언입니다.
- 소프트웨어의 시대 '사용자'로서의 우리의 위상이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차지한 사용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AI 에이전트입니다.
- 오늘 수요레터에서는 Salesforce가 던진 'Headless'라는 단어를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UI는 사라 지고 API만 남는 시대가 어떤 풍경을 만들고 있는지, 그리 고 우리는 이런 시대에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할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 자, 시작해 볼까요?

에이전트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라
- 소프트웨어의 전략을 바꿔야한다는 건 Salesforce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SaaS 회사의 CEO가 같은 방향의 주장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 클라우드 콘텐츠 플랫폼 Box의 CEO 아론 레비(Aaron Levie)가 2026년 4월 X에 'Building for trillions of agents(수조 개의 에이전트를 위해 만들라)'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 글은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회자가 되었는데요.
- 핵심은 한 문장에 담겨 있습니다. 폴 그레이엄이 얘기했던 스타트업의 격언인 'Make something people want(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라)'를 약간 비틀었습니다.
Make something agents want
에이전트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라
- 단어 하나만 바꾼 문장이지만, 지난 소프트웨어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 레비의 계산은 단순합니다. 회사 한 곳에 직원이 100명이면, 그 위에서 작동하는 AI 에이전트는 1만 명, 어쩌면 10만 명이나 될 수도 있습니다. (에이전트를 사람처럼 표현하자면 말 이죠) 사용자 수로 따져보면 AI 에이전트의 존재감에 비해서 인간의 분량은 너무 미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 레비는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에이전트는 당신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당신의 광고를 보지도 않습니다. 그저 가장 잘 통합되고 가장 적합한 도구를 쓸 뿐입니다.
- 그동안 최적화된 모든 인간 중심의 표면들, 즉 UI와 머리(head)들은 새로운 사용자에게는 더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머리가 사라진 소프트웨어
- 'Headless'라는 단어를 좀 더 풀어볼까요?
- 기존 소프트웨어는 화면을 보고 쓰는 사람을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폰트 크기, 색상 대비, 사용자 흐름, 버튼의 위치까지 모두 인간의 눈과 손을 위한 배려로 최적화되었죠.
- 하지만 Headless 소프트웨어는 이런 화면들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AI 에이전트들에겐 이런 화면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화면이 아무리 이쁘고 잘 정돈되어 있으면 뭐합니까? AI 에이전트들에겐 거추장스러운 것들일 뿐이죠.
- AI 에이전트들의 흥미를 끄는 것은 효과적이고 잘 정리된 API와 정제된 데이터들 뿐입니다.
- 이러한 변화는 산업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 Salesforce의 'Headless 360'은 모든 워크플로우를 API 기반으로 다시 짜고, 그 위에 'Agent Fabric'이라는 거버넌스 레이어를 얹었습니다. Box는 회사 정체성을 'AI 에이전트를 위한 파일 시스템'으로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Parallel, Exa 같은 스타트업들은 처음부터 '에이전트가 크롤링하기 좋은 검색 엔진'을 새로 만들고 있기도 하구요.
- 결제 인프라도 이런 흐름에 따라가고 있습니다. 스트라이프(Stripe)와 마스터카드는 에이전트가 직접 자기 지갑으로 결제하는 시스템을 준비 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이전트가 일하다가 필요한 정보의 결제가 필요하다면 판단되면 스스로 결재까지 할 수 있는 워크플로우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거죠.
- API-first는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세계관의 전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용자에서 결과 수령자로
- 컴퓨터 인터페이스의 역사를 봐도 UI의 설계가 얼마나 사람들의 감성에 닿아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데스크톱, 폴더, 휴지통.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컴퓨터 단어들은 사실 모두 은유이죠. 책상 위, 서류철, 쓰레기통이라는 일상 감각을 화면 안으로 옮겨놓은 것일 뿐입니다. 이런 작업들을 완전히 새로운 용어로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미 익숙한 환경들을 그대로 가져와 친숙하게 만드는 것이 그간의 소프트웨어 업계들이 했던 일입니다.
- 스티브 잡스가 강조하기도 했던 '직관성'이라는 가치는, 뒤집어 말하면 인간의 인지 한계가 곧 소프트웨어의 제약 조건이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속도로만, 따라갈 수 있는 복잡도로만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 만약 그 제약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 소프트웨어는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속도와 복잡성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자(User)'였던 시대에서, 단지 '결과를 받는 사람(Recipient)'이 되는 시대로 변환되면, 우리는 더 이상 그 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 무엇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결과만 받아드는 상황. 우리는 이런 것을 정말로 원했던 것일까요?

"I need less heads"
- UI 측면에서의 Headless가 실제로 머리(head)를 줄이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합니다.
- 2025년 9월, Salesforce의 CEO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가 고객 응대팀 4,000명 감축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더 적은 머릿수가 필요합니다(I need less heads)." 라고 말이죠.
- 회사 설명에 따르면, AI 에이전트가 이미 전체 고객 응대의 50% 이상을 처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Headless 360'은 단순한 기술 전략이 아니라, 실제로 머리(head)를 줄이는 일이기도 했던 셈입니다.
- 다른 곳들도 비슷합니다. Amazon은 지난 5개월간 약 3만 명을 감원했고, Meta는 5월에 8,000명을 감축하면서 같은 해 AI 인프라에 1,45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Microsoft는 약 12만 5천 명의 'voluntary departure'를 진행했습니다.
- 2026년 1분기, 미국 기술 업계의 정리해고는 8만 1,747명에 달했습니다. 지난 2년간 가장 큰 규모이죠.
- 여기서 한 가지 짚을 만한 분석이 있습니다. 24/7 Wall St에 따르면, Meta의 경우 직원 전체 인건비가 AI 인프라 투자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직원을 모두 해고해서 절약되는 돈은 AI 투자에 비해 미미하다는 거죠.
- 그렇다면 이 인력 감축은 어떤 의미로 읽혀야 할까요?
- 인력 감축은 '비용 절감'보다도 '산업 이동의 부산물' 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산업의 흐름이 급격히 바뀌면서 사람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는 정황입니다. 인건비를 줄인다는 게 아니라, 그동안 사람이 했 던 그 일이 더이상 필요 없어졌다는 경고입니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시스템
- 비즈니스 모델도 함께 변화하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 SaaS는 사람 머릿수(seat) 기준으로 과금했습니다. 그런데 에이전트는 한 명이 동시에 100개의 작업을 24시간 돌립니다. 그러니 기존의 과금 방식은 더이상 무의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제 방식이 사용량 기반(consumption-based)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 이 흐름은 결국 '토큰 이코노미(Token Economy)'로 수렴합니다. 토큰은 AI가 한 번 생각하고 한 문장을 만들 때 쓰는 최소 단위로 이해하면 되겠죠. 우리가 쓰는 모든 AI 서비스는 이미 토큰 단위로 가격이 매겨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인지 노동이 시간으로 측정되었다면, 기계의 인지 노동은 토큰으로 측정되는 셈입니다.
- 이 변화의 의미는 작지 않습니다. 지난 소프트웨어 시대의 핵심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구독(subscription)'이었습니다. 한 달에 얼마, 1년에 얼마를 내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구독의 모델 과 토큰 이코노미는 다릅니다. 전기나 수도처럼 쓴 만큼 청구되는 계량(計量)의 세계입니다. 산업혁명이 인간의 근력을 전력으로 대체하면서 전기를 단위로 한 경제를 만들어냈듯이, 이제는 인간의 사고와 판단이 토큰을 단위로 한 경제로 옮겨가고 있는 것입니다.
- 여기에 한동안 죽었다고 여겨졌던 마이크로페이먼트의 부활도 거론됩니다. 에이전트끼리 토큰을 주고받고, 정보를 사고팔고, 알아서 결제하는 상황이 펼져지게 됩니다. 사람 사이의 큰 거래가 줄어드는 대신, 보이지 않는 작은 거래가 무수히 일어나는 시대입니다.
- 이 모든 흐름이 인간이 직접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거래, 결정, 책임. 누가 무엇을 결정했고, 어떤 의도로 그랬는지, 잘못되면 누가 책임지는지. 이 질문들이 점점 모호해집니다.
- 지난 몇 차례 수요레터에서 다뤘던 AI 에이전트의 자율성과 인간 의도와의 정렬, 책임의 공백 문제도 결국 같은 문제로 귀결되는 거죠.

우리의 역할
- 우리는 소프트웨어 시대의 '사용자(User)'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여야 할까요?
첫째, 의도를 부여하는 존재
- 에이전트는 주어진 목표에 대해서는 더없이 빠르고 정확합니다. 다만 '왜 그 목표를 향해 가야 하는가'를 스스로 묻지는 못합니다. 1만 개의 마케팅 캠페인을 돌릴 수는 있어도, 우리 브랜드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를 정해주지는 않습니다. 1,000개의 제품 아이디어를 만들 수는 있어도,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를 결정해주지는 않습니다.
- '왜'라는 질문에 답하는 자리는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요?
- 자동화가 가능하다는 것과 자동화를 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질문입니다. 더 빠른 일이 더 좋은 일인지, 더 많은 생산이 더 풍요로운 삶인지. 이런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 결국 우리가 인간으로 남는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둘째, 기준을 설정하는 존재
- 에이전트는 효율을 추구하지만, 어디까지가 지향해야할 효율성이고 어디서부터가 접근해서는 안되는지를 판단하지는 못합니다. 어떤 데이터까지 써도 되는지, 어떤 결정을 자동화에 맡기지 말아야 하는지, 효율과 인간 존엄이 충돌할 때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이런 경계선을 그리는 일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합니다.
- 모든 워크플로우의 결과는 전적으로 인간의 보편적인 이익을 지향해야 합니다. 이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으면, 에이전트는 빈 공간을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채워버릴 것입니다.
- 이런 격랑의 시대를 견디는 힘은 결국 우리의 존재 의미를 묻는 질문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촌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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