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촌장입니다.
최근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17>을 보았습니다. 개봉한 지 좀 시간이 흘렀고 시기적으로 거의 끝물이긴 했지만 주말이고 IMAX 관인데도 불구하고 관객이 10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봉준호라는 명성에 비해서 영화 <미키17>의 평가가 그리 좋지는 못한 분위기 입니다. 흥행 면에서도 예상보다는 저조해서 1억2천만 달러나 되는 제작비를 보전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준호 만의 블랙유머 가득한 이 이야기가 아주 맘에 들었습니다. 정치나 환경 문제 등 여러 이야기들도 영화에서 다루고 있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를 활용하는 봉준호 만의 방식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 미키는 사채업자에게 쫓겨 도망할 궁리를 찾다가 외계 행성 탐사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됩니다. 특별한 재주나 기술이 없었던 미키는 '익스펜더블(Expendable)'로 자원하게 되죠. 익스펜더블은 목숨을 건 위험한 일에 착출되어 사용되다가 죽으면 3D 인체 프린터를 통해 복제되어 다시 살려내면서 이런 일을 반복하는 업무입니다. 죽기 전에 업데이트한 기억을 고스란히 다시 리로드하게 되면 죽지 않고 연속적인 인생을 살아내면서 일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소모 가능한 존재’가 바로 익스펜더블입니다. 사람들은 미키에게 묻습니다.
“죽는다는 건 어때?”

미키가 복제되는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3D 프린터로 머리부터 복제가 되는데, 덜컹거리면서 약간 랙이 걸리고 앞뒤로 흔들리면서 진행됩니다. 깔끔하고 멋진 그런 프로세스가 아닙니다. 그리고 종이 받이가 없으면 프린터된 종이가 땅으로 떨어지잖아요? 그런 상황도 있습니다. 참 봉준호 스럽습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미키17이 사고로 죽은 줄 알았지만, 크리퍼라는 외계생명체의 도움으로 얼음 구덩이에서 살아 돌아오면서 시작됩니다. 간신히 살아 돌아온 미키17은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가 침대 위에 누워있는 자신의 다른 복제체, 미키18을 발견하고 깜짝 놀랍니다. 미키17이 이미 사망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미키18을 이미 복제했던 겁니다. 이러한 상황을 영화에선 '멀티플(Multiple)'이라 부르는데요. 멀티플은 철학적, 도덕적 아이러니가 해결되지 못한 불법으로 간주됩니다.

예전 지구에서 인체 프린터를 주관하던 과학자 중에서 ‘앨런’이라는 사이코패스가 있었습니다. 이 자는 자신을 복제해서 하나는 일상의 업무를 하고, 또 다른 존재는 사회 소외 계층을 살해하는 이중 생활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완벽한 알리바이로 법망을 피해갔지만 결국 이 둘이 다 잡히게 되었죠. 이제야 사건이 해결되나 싶었지만 살인 사건은 멈추지 않습니다. 결국 또 한명의 복제가 존재한다는 게 밝혀졌고, 3명의 앨런이 붙잡히게 되면서 사건은 종료됩니다. 이런 상황을 ‘멀티플’이라고 부르면서 종교, 사회, 과학이 격렬하게 대립합니다. 결국 익스펜더블은 지구 밖에서만 사용될 수 있으며, 만약 멀티플이 발생하는 순간 그 대상을 모조리 완전히 삭제해야한다는 조건을 달게 되죠.
결국 미키 17과 미키 18은 진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미키18은 미키17을 제거하려 하죠. 하지만 결국 생존을 위한 공존의 방법을 찾아 나서게 되면서 영화의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됩니다.
이런 비슷한 소재를 가진 영화 중에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오블리비언>이 있습니다. 벌써 10년이 흘렀지만, 지금 봐도 소재나 효과가 신선합니다. 조작된 기억으로 자신의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던 ‘잭 하퍼’는 우연한 사고로 수없이 많은 ‘잭 하퍼’의 복제들이 존재하고 자신들만의 영역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충격에 휩싸이죠. 자신이 복제된 존재이며 자기 말고도 똑같은 잭 하퍼들이 살아서 활동하고 있다는 자각. 혹시 아직 못보셨다면 이 영화도 추천드립니다. 재밌습니다.

영화 <미키17>가 다른 인간복제를 다루는 영화와 다른 독특한 부분은 복제된 두 명의 미키가 각각 퍼스널리티가 다르다는 설정입니다. 미키 17은 뭐랄까요? 약간 어리숙한 모습이죠. 좀 주눅들어 있고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펼치지도 못합니다. 수동적으로 익스펜더블의 역할을 묵묵히 담당하죠. 반면 <미키 18>은 꽤나 주도적이고 다혈질적이고 과격한 성격을 지녔습니다. 스스로 상황을 개척해 가기 위해 주도적인 모습을 보이죠. 똑같은 기억으로 복제된 두 명의 존재는 완전히 같은 ‘나’가 아닐 수 있다는 아이러니. 그래서 이 영화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미키17과 미키18은 과연 동일 인물일까요? 모습이 동일하고 기억도 같다면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똑같지만 자아도 일치할 수 있을까요?

봉준호 만의 블랙유머는 이런 인간복제를 영생의 도구가 아니라 소모품처럼 활용한다는 데서도 번득입니다. 물론 원작인 <미키7>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온 것이지만, 끝없이 복제된 자신은 무한반복되는 업무와 일상에 지쳐가는 우리를 비치는 모습같다고나 할까요? 우리도 일상에서 자신을 '소모품'처럼 느낄 때가 있지 않나요? 회사에서는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인력으로, 사회에서는 숫자로 평가되는 개인으로 말이죠. 그런 점에서 <미키17>은 단순한 SF영화로 읽히지는 않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런 메시지를 줍니다. 우리는 고유한 존재다. 복제되고 반복된 루틴에 얽매인 소모품이 아니다. 탈출하라.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라 라고 말이죠.
주인공 미키를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미키17과 미키18을 동시에 연기하면서, 목소리와 톤만으로도 두 인물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표현력을 보여줬습니다. 로버트 패틴슨의 섬세한 연기 덕분에 영화의 철학적 질문들이 더 생생하게 살아났다고 생각합니다. 칭찬합니다.

<미키 17>을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마지막 영화관 관람을 권합니다. 개봉관 찾기가 쉽지는 않지만 말이죠. 깨알같은 봉스타일의 디테일들이 여전히 재미있고, 봉준호 감독이 던지는 질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복제될 수 없는 단 하나뿐인 존재입니다.
촌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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