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튜링의 사고 실험
미국의 인공지능학회에서는 튜링 테스트 란 행사를 매년 열어 왔습니다.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이름에서 따온 이 행사는 '인간같은 기계(컴퓨터)'가 가능한 지를 검증하는 행사입니다. 앨런 튜링은 생각을 복잡한 내용으로 규정하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 기계가 인간처럼 행동하고 말한다면 ‘기계도 생각할 수 있다고 판단’하자는 주장했죠.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한 <이미테이션 게임>은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일대기를 다룹니다. 앨런 튜링은 애플의 베어문 사과 이미지의 모티브를 제공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누가 인간으로 보여?
시험 방법은 이렇습니다. 서로를 가린 채, 심사위원단은 인간 연합군과 컴퓨터 프로그램과 5분간 대화를 나눕니다. 상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순수하게 단말기 상의 대화만을 가지고 누가 인간인지 누가 컴퓨터인지 밝혀내는 경기입니다. 최고점수를 받은 인간에게는 '가장 인간적인 인간' 이란 상을, 최고점수를 받은 컴퓨터에겐 '가장 인간적인 컴퓨터'란 상을 주게 됩니다.
(출처 : DALL-E / 안철준)
기계를 통해 인간의 특징을 밝혀내다
'튜링 테스트'에 흥미를 가진 브라이언 크리스찬은 인간 연합군의 일원으로 2009년 튜링 테스트에 참가하게 됩니다. 테스트를 준비하는 6개월 동안 인공지능 컴퓨터에 대해 심도 있는 관찰을 했고, 더불어 무엇이 가장 인간적인 특성인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찾아낸 '가장 인간다운' 특징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인간다운 인간> 이란 책입니다.
"기계가 어떤 유형의 인간 행동을 모방할 수 있는가? 라는 과학적 물음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한다."
<가장 인간적인 인간> 중에서
불완전함이야말로 인간의 특징
수많은 사례와 실제 '튜링 테스트'의 기록들을 살펴본 브라이언 크리스찬은 이외의 데이터를 발견하고 놀랍니다. 통상적으로 인간적인 능력이라고 볼 수 있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과 논리는 인간다움의 특징이 아닐 수 있다는 거죠. 데이터를 통해 확인한 인간다움의 특징은 아래와 같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인생
예상치 못한 균열
즉흥성
서로의 진짜를 알아가는 능력
압축되지 않는 개별적 낯설음
무방비 상태
어떤가요?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그렇지 않나요?
삶이라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불완전함과 낯설음이야말로 인간다움의 고유한 특징들이 아닐까요? (출처 Motion Array)
챗GPT도 튜링 테스트에서 탈락
<가장 인간적인 인간>은 2013년에 출간된 책입니다. 벌써 10년도 전에 나온 책이죠. 만약 지금 최근의 LLM 모델 기반의 AI가 튜링 테스트에 도전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바로 그런 실험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조지아대학교 연구진이 챗GPT를 이용해서 튜링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챗GPT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좀 실망스러우신가요? 사실 요즘 생성형AI의 성능을 생각하면 좀 의외이기도 합니다. 충분히 통과할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런데 통과하지 못한 이유가 답변을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보다 너무 뛰어난 정답을 내놓는 바람에 AI 라는 게 탄로 났다는 설명입니다. 챗GPT의 대답에 인간미가 없었던 거죠. 브라이언 크리스찬의 인간다움에 대한 통찰이 10년이 지나 AI의 놀라운 도약 상황에서도 의미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되네요.
챗GPT가 아직도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답을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정확하게 대답해서 인간미가 없어 AI로 탈로났다고 합니다. (출처 : DALL-E / 안철준)
인간이기 때문에 불안한 것
오늘은 어제와 같지 않습니다. 우리의 감정과 생각은 늘 변하기 마련이고, 뜻밖의 사건들과 새로움으로 혼란스러워합니다. 늘 같은 일상이라 느끼지만, 그 속에 미세한 변화는 있게 마련입니다. 똑같은 상황은 없고, 그래서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서 두려워합니다. 이런 상황들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인간이기 때문에 불안한 겁니다.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이성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인간적’이라 하지 않고 ‘로봇’ 같다고 하죠.
"직업 가수인 그녀는 흔들림 없이 노래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공연 때마다 미세하게 감지되는 그 날만의 독특함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 자신이 터득한 기술에 균열이 생기면서 자신을 빠져들게 만드는 뜻밖의 순간들, 그래서 사물을 새롭게 보고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 있음을 알리는 신호라 하겠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가장 인간적인 인간> 중에서
그 순간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떨림과 흔들거림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신호일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야 말로 우리가 AI와 다르게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겠죠. (출처 Motion Array)
가장 인간적인 인간
결국, 브라이언 크리스찬은 2009년도 '튜링 테스트'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간'상을 받게 됩니다. 인간과 닮은 AI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은 어쩌면 AI를 통해 우리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됩니다. 결국 혼돈과 불안 같은 요소야 말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특성이고, 이런 특징들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 자신을 더욱 더 사랑하는 것,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 하는 노력들이 우리를 좀 더 인간답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각성 시킵니다.
브라이언 크리스찬은 기계의 특징을 통해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해 내는 독특하고 흥미로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알고리즘, 인생을 계산하다>란 책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출처)
"인간미가 없어."
사실입니다. 챗GPT에는 인간미가 없습니다. 너무 인간적이지 않도록 훈련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AI시대에 우리가 인간답게 되어야 하는 이유를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촌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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